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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rved

​야마다 타로 이야기

​야마다 타로 X 미무라 타쿠야

미무라 타쿠야는 겨우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위치까지 올라간, 화도계의 새로운 주역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따금 선을 보였던 형태와는 또 달랐으나, 그의 꽃꽂이는 여전히 그답게 화려했고 빈틈없이 아름다웠다.

“……라고 평론가가 말하던데.”

“비아냥이야?”

“아니. 친구 잘 둬서 좋다고. 덕분에 인터뷰 잡기 쉽다고 선배가 날 아주 네 전용 대변인으로 취직시켜주려나 봐.”

이케가미가 팔꿈치로 미무라의 허리를 찔렀다. 미무라는 또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이케가미를 향해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고등학교 시절, 접점 하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만나 벌써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차갑고 서늘한 첫인상과 달리 미무라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케가미도, 그들의 또 한 명의 친구도 미무라의 눈에 들 수 있었다. 눈에 들다.

친구끼리 쓰기엔 어색한 표현이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케가미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평범한 인생,

극히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에 걸맞게 친구도 일반적인 범위 내의 수 정도는 있었다. 또 한 명의 친구, 야마다 타로는

아주 드문 재능 덕에 극히 드문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타고나기를 벽 하나 없이 태어나 친구를 자처하는 이가 아주 비상식적으로

많았다. 마지막으로 미무라 타쿠야는 그 역시도 드물고 드문 인생을 보내왔으나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둔 적은 없었다. 오는 사람은 막고 가는 사람은 잡지 않는 식의 협소한 인간관계, 무슨 일에든 제 흥미가 당기지 않으면 한발 물러서 있는 냉소적인 성격.  그런 미무라가 드물게 재미있다고 여긴 사람이 바로 야마다와 이케가미였다. 지금은 그것만이 아닐지언정,

적어도 미무라의 관점에서 세 사람을 이어준 계기는 흥미 본위가 맞았다.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성격이, 지나치다 싶게

사람에게 무심한 행동이, 돈 많고 잘생겼고 집안 좋고 머리도 좋아서 지나치게 부족할 것 없이 자라난 탓이라고 이케가미는

줄곧 생각했다. 아쉬울 게 없어서. 필요하지 않아서. 그게 제 착각임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미무라의 전시회는 늘 정해진 구성이 있었다. 커다란 화랑은 마치 미로 같았다.

입구부터 크고 화려한, 때로는 극도로 섬세하고 정갈한 작품이 쏟아져 내리듯 이어졌다. 흐드러진 꽃을 쫓아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출구에 다다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가 스쳐 지나가는 출구 바로 앞 로비에는 언제나 노란 꽃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 크지 않고 그리 화려하지 않고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화병에 단출하게 꽂힌 노란 프리지아.

회장을 나서다 말고 이케가미는 문득 뒤를 돌아봤다. 로비를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유독 선명하게 그 꽃이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놀라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꽃 몇 송이일 뿐건만. 투명한 화병에 아무런 치장도 없이 소담한 몇 송이가 곧게 서 있는 모습. 작품 설명서에도 담겨 있지 않은 마지막 전시품. 이케가미는 미무라답지 않은 배치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그 순간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소한 위화감에 불과했다. 어차피 잡지에 실리는 것은 메인 회랑에 전시된 작품이 주를 이뤘다.

이케가미의 주된 관심사 역시 기사를 쓸 만한 것에 있었다. 그 꽃과의 재회는 이케가미가 도저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뤄졌다.

야마다는 늘 그렇듯이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대로 교수님의 눈에 들어 연구실로 납치되듯 박사 과정을 밟게 됐다.

연구실을 옆 동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라 졸업식이라고 해봐야 큰 의미도 없다며 사양하는 야마다에게 이케가미는 한사코 졸업식에

참여하겠노라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더랬다. 명문대 대학원의 졸업식이란 곧 좋은 인맥을 만들 절호의 찬스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잠시 들른 그의 새 연구실에서 이케가미는 벽에 걸린 노란 꽃을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삭막한 회색 시멘트벽에 선명하게 자리한 말린 꽃이 누구의 솜씨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미무라 군 왔다 갔어?’

‘아니. 개인전 끝나고 취재도 있고 바빠서 못 온대. 어떻게 알았어?’

‘저거. 미무라 군이 보낸 거지?’

‘이케가미 씨, 대단하다. 역시 예술 잡지 기자는 보는 눈도 다른가 봐. 어떻게 알았어?’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묻는 야마다를 향해 이케가미는 어째서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목이 막힌 것처럼 입만 몇 번 뻐끔거리다 그저 감이라며 웃어넘기고 말았다. 전시회를 장식한 수많은 꽃 중 가장 수수하고 작은 꽃을 굳이 말려

선물한 의도를 알지 못해 언급하기 망설여진 탓이다. 그래, 혹시 야마다와 미무라 사이에 오해라도 생길까 싶어, 이케가미는 입을

다물었다. 잎 하나 상하지 않도록 고이 말린 꽃과의 첫 만남은 그런 심정이었다. 그 뒤로도 미무라의 개인전마다 마지막 출구 옆에서 프리지아를 볼 수 있었다. 네 번째 개인전이 끝나자 평론가는 저마다 노란 프리지아를 하나의 상징으로 분석했다.

누군가는 프리지아의 꽃말을 따라 개인전을 보고 나가는 모든 관객을 향한 감사의 인사라고 평가했고, 또 누군가는 화려한

작품 세계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의미한다고도 추측했다. 이케가미가 준비한 여러 질문지에도 마지막 꽃의 의미를

묻는 항목이 늘 포함되어 있었으나, 1차 확인을 거쳐 매번 삭제되고 말았다. 답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예술가 중에는 굳이 제 의도를 밝혀 해석이 한정되는 걸 저어하는 이도 없잖아 있어 그 누구도 미무라의 침묵을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예술계에 별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괴짜에 비하면 미무라는 어렵고 까탈스러운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질문 한두 개 정도 잘리는 것쯤이야 별다른 일도 아니다. 이케가미가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고이 보관된 노란 드라이플라워를 두 번째로 본 것은 취재차 나갔던 미무라의 개인 작업실에서였다. 여섯 번째 개인전을

이제 막 마무리한, 기세 좋은 젊은 화도가에게 그 소회를 묻기 위한 인터뷰가 목적이었다. 개인전이 끝났다고 한들 별도의 의뢰나

작품 활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업실은 이케가미의 키보다 더 큰 철사 조형물과 곧 제 위치에 자리 잡기를 기다리는 꽃봉오리로 그득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케가미는 반쯤 말라붙은 노란 프리지아를 다시금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송이 사이에서 유달리 이질적이었다. 무슨 처리를 한 것인지 그 색을 잃지 않고 그저 생명만이 빼앗긴 듯 박제된 프리지아를,

미무라는 소박한 흰색 포장지로 감싸놓았다. 화려하고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미무라의 개인실에 있기엔 꽃도 그 포장도 낯설었다.

심지어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해둔 것처럼 작업실 가장 바깥쪽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놓인

손바닥만 한 카드는 무엇을 쓰다 지웠는지 글씨 위로 난잡하게 선이 덧칠되어 오히려 눈에 띄었다. 망설인 흔적이 역력했다.

저 꽃다발의 주인을 누구나 궁금해할 터였다.  유서 깊은 화도 종가 출신이라는 배경에 무슨 직업을 선택했든 결국 잡지에

실렸을 법한 얼굴이 합쳐져, 미무라는 일반적인 화도가가 아닌 일종의 연예인과 같은 취급을 받곤 했다.

관심 가지는 연령층이 넓어졌다, 화도에 문외한이던 이의 입문이 늘었다 등의 좋은 평가도 있으나 전통과 격식을 중시하는 이에게서 못마땅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어쨌건 이 좁은 업계에서 시선을 모으는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그런 미무라 타쿠야가 꽃다발에

곁들이는 카드 하나도 쉽게 쓰지 못하는 상대.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케가미는 자연스레 그 답을 떠올리고

말았다.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첫 개인전의 출구를 장식했던 꽃이 누구에게로 갔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10년도 훌쩍 넘게 지켜봐 온 친구로서 그리고 5년 넘게 그를 쫓아온 담당 기자로서 알고 있는 미무라의 모든 것이 단 한 사람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개인전이 끝난 이후 꽃의 행방은 미무라 본인이 아닌 종가와 매니지먼트사의 계약에 의해 정해졌다.

처분이든 판매이든 보존이든 그 어떤 것에도 미무라는 관여하지 않았다. 자연이 지니는 순간의 극치를 담아내는 꽃꽂이에서

그 이후란 애초에 모두의 관심사는 되지 못했다. 제아무리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일지라도 미무라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무라는 개인전이 끝나면 팸플릿에도 실리지 않은 몇 송이의 꽃을 챙겨, 저 혼자만의 공간에서, 정성을 쏟아

한 점 흐트러짐도 없도록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었다. 추측하건대 여섯 번의 개인전을 거치며 매번. 정성과 시간과 마음을 담아 만든 꽃다발이었다. 가볍게 건넬 물건은 아니다. 그 정도의 마음이 담긴 것을 줄 만한 이가 미무라에게 달리 또 어디 있겠는가.

애석하게도 피가 통한 혈육도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예술계에서조차 가까이하는 이 하나 없기로 유명한 외톨이였다.

미무라의 주변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사람 중 친구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케가미 그리고 야마다 타로 단둘 뿐이다.

장담하건대 앞으로 몇 번의 개인전을 거치더라도 노란 프리지아가 제게 건네지는 일은 없으리라고, 이케가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유달리 각별했다. 야마다 타로에 대한 미무라 타쿠야의 우정은 별스럽게도 애틋했다. 돌이켜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더불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케가미는 목 끝까지 올라온 물음을 참아냈다.

‘야마다 군이 그렇게 좋아?’

혹시 좋아하는 건지, 의문이라도 가져볼 수 있으면 차라리 좋았을 테다. 저 꽃에 담긴 감정이 쨍하니 선명해서 모르는 척도
할 수 없었다. 언제였더라. 이제 막 기자가 되어 이리저리 깨지며 사회의 쓴맛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때. 아마 그즈음이었으리라.

이케가미가 미무라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 같이 술을 마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참을 이케가미에게 시달리던 미무라가 비죽이 웃으며 말했다.

‘이케가미, 너는 내가 그렇게 편해? 잘 생각해 봐. 우리가 그렇게 마냥 편한 사이가 아닌데.

내가 작품 활동을 해야 너도 기사를 쓸 거 아냐, 응?’

‘내가 취재할 대상이기 전에, 잘나가는 선생님이기 전에,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친구? 우리가?’

평소와 같은 미무라의 장난이었을 테다. 물론 술이 머리까지 차오른 주정뱅이에게는 농담이 통하지 않았다.

‘헉, 진짜? 진짜로? 진심으로 되묻는 거야? 야마다 군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미무라 군이랑 오래! 이만큼이나!

이만큼 알고 지냈는데에에!’

취해 늘어지는 손으로도 어떻게든 미무라의 소매를 붙잡고 붕붕 흔들었다. 미무라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케가미의 눈앞도 함께 흔들렸다. 그 정신 없는 시야와 웅웅대는 제 목소리 사이로 어렴풋이 미무라의 혼잣말이 섞여 있었다.

‘하긴 오히려 우리 둘이야말로 진짜 친구인지도 모르지. 진짜 친구 사이는 이런 건데 말이야.’

당시에는 그 말이 친구 사이임을 인정해준 것 같아 마냥 안심되고 기뻤다. 취해 있던 탓에 말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렇게 흘러가 묻혀 있던 말이 왜 이 시점에 다시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케가미는 자꾸만 씁쓸해지는 마음을 무시하며

꾸역꾸역 인터뷰를 마쳤다. 평소처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니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란

때때로 일방적이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일이다. 짝사랑 따위에 놀랄 만큼 인생을 모르지도 않았다.  그래, 아무 일도 아니다.

애써 추스른 마음 위로 업무를 쌓아 올려 이케가미는 그날의 충격을 잊으려 노력했다. 애초에 미무라가 밝힌 적도 없는 개인사였다. 친구로서도 업무 대상으로서도 멋대로 제 감정을 덧붙이는 건 주제 넘은 짓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그 미무라인데.

그 미무라 타쿠야인데. 속으로 되뇌다 또 문득 홀로 혀를 차게 됐다. 그 미무라 타쿠야라서, 그러니 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을.

끝내 이케가미는 참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이곤 했다. 미무라가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리고

더 해보라는 듯이 부추기기까지 하던 그 못된 버릇이 또 도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혼자 끝도 없이 달려 나가 망상의 나래를 펼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알게 됐다. 그저 꽃다발이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 안에서도 끝맺음이 필요했다. 달려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많이 바쁠 텐데 너무 갑작스러웠지. 미안해.”

어색하게 웃으며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자 바로 눈앞에 문제의 꽃다발이 보였다. 언제 와서 주고 갔는지 알 수 없으나

새초롬하게 테이블 위를 꾸민 투명한 꽃병마저 미무라의 손길이 닿아 있음이 분명했다. 야마다가 알면 기겁할 정도의 금액을

호가하는 유명 도예가의 작품이었다. 미무라가 유독 마음에 들어 해 협력 촬영도 서너 번 진행했던 터라 기억에 남아 있는

물건이었다.  야마다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와 이케가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꽃다발을 사이에 끼고 앉은 모양새라 이케가미는

몰래 쓰게 웃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야마다는 여느 때와 같은 다정한 얼굴이었다.

“이렇게라도 얼굴 보면 좋지. 이케가미 씨랑 미무라 군, 둘이서 매번 나만 빼놓고 만나잖아.”

“그건 업무지. 업무. 대신 두 사람도 나 빼고 자주 만나는 거 아냐?”

“응?” “저 꽃, 미무라 군이 주고 간 거잖아.

아아, 짧은 감탄 뒤로 야마다의 웃는 얼굴이 잠시 흐려졌다. 꽃다발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퀵 서비스로 도착했더라.” 

“꽃만?”

“이 화병까지 같이. 이래저래 미무라 군 얼굴 못 본 지가 벌써 1년도 넘었지 싶은데. 셋이서 만난 지도 좀 됐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얼굴 봤지, 둘만 만나는 일은 요 몇 년 사이에 거의 없었어. 미무라 군이 워낙에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야마다의 목소리에 그리움과 쓸쓸함이 섞여 있어 듣는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야마다는 제가 신뢰하는 이가 말하는 족족 믿는 경향이 있어 미무라의 저의를 의심하진 않는 듯했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 생각이 없는 이도 아니다. 미무라에게 야마다가

특별한 만큼 야마다에게도 미무라는 특별한 존재였다. 셋이서 함께 지내왔다고 말은 하나, 셋이서 나누는 우정과 미무라와

야마다 사이의 우정은 또 달랐다. 각별하다. 이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사이였다. 그 각별함이 독이었다.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다. 어어, 그래, 많이 바쁘지. 이케가미의 입에서 재빠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모르게 변명이 이어졌다. 저를 미무라의

공식 대변인으로 만들 작정인 선배의 바람이 이렇게 실현되고야 마나. 이케가미는 어설프게 웃으며 미무라가 얼마나 바쁜지,

얼마나 정신없이 일이 진행되는지, 얼마나 숨 돌릴 틈도 없이 오퍼가 들어오는지 중언부언 설명을 덧붙였다.

그때마다 야마다는 대단하네, 잘됐네, 역시 미무라 군이야,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다 불쑥 한마디를 뱉는 것이다. "미무라 군 보고 싶다." 가볍게 흘러나온 말인 걸 알면서도

이케가미는 또 참지 못해 불쑥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야마다 군은 요즘 어때? 요즘도 많이 바쁜 시기인가?

” “아니. 개강 직전이라 애매해서 그런가 지금이 차라리 여유 있어. 어쨌든 강사가 준비할 일은 일단락됐고

수강 신청 결과가 나와야 또 다음 일이 생기니까.”

은근히 긴장한 기색이었다. 수강 신청 결과라고 해봐야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을,

아직도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순진함은 야마다의 장점이었다.

 

“야마다 군 강의야 언제나 만석이잖아.”

“운 좋게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나 봐.”

물론 단점이기도 했다. 이렇게 둔해서야 미무라의 마음을 눈치챌 리가 없다. 대놓고 들이밀어도 알아주기나 할까 싶건만.

애초에 알리고 싶지도 않겠지. 이케가미는 쓰게 웃으며 재킷 안에 넣어둔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가능하면 다음 주에 하루 시간 좀 내줘. 셋이서 저녁 먹자.

” “셋이서? 미무라 군도 올 수 있을까?”

들뜬 티가 역력한 야마다를 향해 이케가미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5년이나 이 업계의 담당 기자로 살아왔다. 이 시기의 화도계의 굵직한 스케줄 정도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미무라의 일정이라면 더 자세히도 알고 있었다. 실리기만 하면 판매 부수가 뛰는

인터뷰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는 것도 제 업무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알고 또 알다 보니 심지어는 그가 왜 야마다를 단둘이서는 만나려 하지 않는지까지도 너무 잘 알아 문제였다. 

‘진짜 친구 사이는 이런 건데 말이야.’

읊조리던 말에서 묻어나던 자책과 수치심이 세월과 함께 몸집을 불렸겠지. 혹시라도 티가 날까 봐.

혹시라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하고 싶어질까 봐. 그러다 친구 사이도 유지할 수 없을까 싶어 끝내 저 대신

꽃을 보내고 있었다. 미무라답지 않게 미련했다. 셋이서 만나는 자리엔 아무리 바빠도 꼬박꼬박 나오면서,

둘만의 자리는 기를 쓰고 피하는 모습이 애달프기도 했다. 그렇다고 평생 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자연스레 시들 마음이었다면 이케가미가 눈치챌 일도 없었을 테다. 마음이 저물 때까지 마냥 이렇게 외면하고 기다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었다. 미무라가 한 손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느슨해지지 않은 손길로,

지독하게 섬세한 드라이플라워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상 더욱이. 카드에 몇 번이고 썼다 지웠을 여러 말이 아직도 넘쳐나고 있으므로 당연하게도. 언제나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태도가 예전에는 다 가진 이의 오만이라 생각했던가. 그러나 제 생각이야말로

오만이었다. 이는 한없이 다 가진 탓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탓이었다. 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미무라 타쿠야는 그래서 늘 건조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몰랐다. 욕심내지 않기 위해. 발을 담그기가 마냥 겁이 나서.

반쯤 막무가내로 약속을 잡고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부랴부랴 연구실을 나왔다. 잰걸음으로 뛰듯이 강의동을 빠져나오자 왈칵 눈시울이 붉어졌다. 야마다의 연구실을 장식한 꽃다발이 다시금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과 달리 끝맺지 않은 찝찝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존재 그 자체가 강렬했다. 가장 아름답게 피었을 순간에는 전시회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이 조명의 초점 하나 맞춰두지 않은 꽃이자, 전시회가 끝난 이후에는 그 모습 그대로

고이 말려 오래도록 생명 없이 박제되어버린 노란 프리지아. 미무라의 마음 그 자체였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보답 받고자 하는 욕심도 저를 알아줬으면 하는 충동도 모두 등지고서, 미무라는 매번 새로운 마음을 키워 다시 또 말리고 있었다. 

이케가미는 얼른 눈물을 닦아냈다. 미무라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오직 마음이 아플 따름이었다. 치기 어린 십 대부터 사회의 풍파에 시달리는 삼십 대까지 곁을 지켜온 오랜 친구가 홀로 짊어진 고독이 너무나도 무거워 보인 탓이다.

물론 누구도 함께 짊어질 수는 없는 짐이었다. 이케가미는 미무라에게도 당장 다음 주에 시간을 비우라 재촉하는 문자를 보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미약하나마 두 사람 사이에서 끈을 놓지 않는 것 정도였다. 친구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겁내지 않고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 정도라면 만들 능력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를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로서 이 정도의 오지랖은

부릴 자격이 있다 믿었다. 그러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 끝을 맞이하게 될지언정,

그 미련하게도 아름다운 꽃다발이마땅히 놓여야 할 자리에 편안히 놓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었다.

 

프리지아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 어느 날에.

※프리지어가 외국어 표기상 맞는 표현입니다만, 글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꽃의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프리지아'로 표기했습니다.

※화도(華道)와 관련된 용어는 한국어로 표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일본어의 한자를 그대로 직역해서 사용했습니다.

※현실의 화도 업계 내부 사정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쇼른러 A] @subacfort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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