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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마츠모토 준 X 사쿠라이 쇼

 짝사랑은 고되다.

 

 당신은 내 세상의 전부이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저 주변인일 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이 상실감과 허탈함이 늘 나를 괴롭히기에.

그렇게 상처 받으면서도 당신의 눈길 한 번, 손짓 한 번에 치유되어 그 이상의 것을 갈망하기에. 그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누구든지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참, 잔인한 사랑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상대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산다면? 그건 더 큰 고난인 셈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마음대로 방출할 곳도 없이 끙끙 앓으며 감추기에만 급급해야 했다. 혹여나 이 진득한 마음을 들켰다간 돌아오게 될 후폭풍이 두려우니까.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 넘쳐버릴 것만 같은 애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해진다.

 

 이 빌어먹은 짝사랑은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어졌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텐데 우습게도 그런 잘못된 점은 꼭

나중에서야 발견되지 않는가.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첫 단추가 꿰인 시점인,

두 사람의 첫 만남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원을 비는 것뿐이었다.

 

 아쉽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요정 같은 건 이 세상에 없고 어쩌면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길을 걷게 될 지도 모를 일이지만.

 

 

-

 

 

 인간관계에 있어서 첫인상은 정말 중요하다. 그 순간 결정되는 이미지의 힘이란 생각보다 강력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 있어서 쇼는 준이에게 아주 강력한 첫인상을 심는 것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준과 쇼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첫 만남 정도는 학교나 학원인 것이 보통이었겠지만 이 둘은 아니었다. 존재 여부조차도 알지 못했던 사이였음에도

둘이 마주앉게 된 이유는 ‘가족’이 되기 위해서였으니까. 부모님들의 재혼이었다. 준이의 아버지와 쇼의 어머니의 재혼.

 

 곧 중학교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준이에게 아마도 교복을 입고 단정히 앉아있던 쇼의 모습은 꽤나 멋있었던 모양이다.

살짝 웃어주며 제게 인사해주던 쇼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한 걸 보면 말이다. 순전히 쇼 덕분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앞으로 가족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 했던 건, 전부 쇼 덕분이었다.

 

 물론 그 때의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여느 어린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에 대한 단순 선망이었으리라.

 

 다만 그 작은 선망이 어떤 형태의 감정으로 피어날 지를 아무도 몰랐을 뿐이었다.

 

 

-

 

 

 어린 준이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쇼를 향한 동경 그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숙하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니 자라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준이의 모든 관심은 온통 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쇼도 그러한 준이의 관심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잘 따라주는 준이에 흐뭇해하고 귀여워하며

그에 따른 애정을 쏟아부어줄 뿐이었다. 그것이 결국 독이 될 줄을 모르고.

 

 감정이라는 것이 어려운 건 결국 방향을 살짝만 달리해도 금세 다른 감정의 이름을 붙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준이가 딱 그러했다. 시작이 어떤 감정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베이스였던 애정과 관심이 어느 순간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막연히 쇼가 좋은 형이고 멋있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그 감정의 농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준이는 눈치 챘다.

가족으로서의 형을 사랑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도때도 없이 쇼와 닿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리가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쇼의 시간이 궁금하고 그 시간 동안 함께 했을 누군가를 질투할 리가 없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쇼를 향한 마음이 집착이 되었고 욕심이 되었음을 알아버린 건 아마도

섣불리 쇼의 방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기 시작했던 때였으리라.

 

 

 ‘형-.’

 

 

 쇼는 준이에게 좋은 형제이기도 했지만 또 좋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고

준이 수준에 맞게 설명해주기도 참 잘 했기 때문에. 그 날도 준이는 안 풀리는 문제를 들고 방을 찾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주인은 그 안에 없었다. 그제야 준이는 쇼가 학생회 일로 늦을 거라고 언질을 줬던 것을 상기해내었다.

까먹어도 아까 말한 걸 까먹나 싶어 고개를 휘휘 저은 준이 그대로 쇼의 침대에 뛰어들었다. 마음먹고 공부 좀 하려고 했었건만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불 가득 쇼의 체향이 묻어나오는 덕에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쇼에게서는 늘 좋은 향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이는 몸을 웅크리며 그 이불을 꽉 껴안았다.

그대로 코를 박고선 한껏 그 향을 만끽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불 속에 파묻혀있었다.

 

 그 날 밤, 준이는 꿈을 꾸었다.

 알몸의 쇼의 품에 꼭 안겨서, 쇼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끝없이 쇼를 갈망하는 꿈을.

이불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강하게 제 코 끝을 찌르는 쇼의 체향에 취해 정신없이 그것을 탐미하는, 그런 꿈을.

 

 그 이후로 준이는 한 번도 쇼의 방에 들어간 적이 없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

 

 

 ‘마츠모토 준.’

 

 

 준이는 쇼를 필사적으로 피했다. 가져서는 안 될 것을 탐내고 있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고삐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쇼를 피해야했다. 쇼의 그 달큰한 체향을,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등교 시간을 앞당기고 하교 시간을 늦췄다. 휴일엔 최대한 집에 붙어있지 않았고 집에 있게 되더라도

방에 틀어박혀 있기를 택했다. 대충 제 또래의 친구들처럼 사춘기가 왔겠거니, 하고 넘겨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쇼는 그 예전부터 참 다정한 사람이었고 준이의 변화의 원인이 자신임을 알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런 준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몇 번의 대화 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칼같이 잘라버리는 준에 결국 쇼가 화가 냈다.

 

 

 ‘불만이 있거나 마음 상한 일이 있으면 그냥 바로 이야기를 해. 왜 사람 기분 나쁘게 자꾸 피해? 티나 내지를 말던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피하는데 신경 안 쓰일 사람이 어디 있어. 뭔지 지금 말해. 말 해주기 전까지는 나 안 나가.’

 

 

 쇼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끝장을 볼 작정으로 이 방에 들어와 저렇게 자리하고 앉았을 터였다.

하지만 준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대체 뭐라고 해야 하냐고. 형을 상대로 살색 가득한 꿈이나 꾸고,

자꾸 주제넘게 그 목덜미에 당장 입을 맞추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옆에 있기만 하면 자꾸 그 군침 도는

살갗을 물어버릴 것만 같다고? 그랬다가 경멸의 눈빛이 돌아오면? 차갑게 가라앉아서 저를 내치려고 하면?

 

 

 ‘말 해. 내 눈 피하지 말고.’

 

 

 무서웠다. 제 감정이 들춰지기라도 하는 날에 이 평화롭던 가정에 몰아치게 될 폭풍이. 쇼가 제 형이라는 사실이 정말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옆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준은 비겁하게 굴기를 택했다.

당장은 제 감정을 온전히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미안. 그냥 요새 좀 피곤했나봐. 잘못했어.’

 

 

 쇼는 준이의 작아진 모습에 늘 약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준이가 먼저 꼬리를 내리면, 쇼도 그 이상 닦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가 죽은 준이를 달래줄 뿐이었다. 아마 나름의 노력일 것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채로 가족이 된다는 건,

그런 수고스러움이 꼭 뒤따르기 마련이었으니까. 한껏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하는 준이에 쇼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듯

눈썹을 까딱였으나 이내 작은 한숨을 쉬곤 방을 빠져나갔다.

 

 이 날 처음으로 준이는 쇼를 찾으며 자위했다.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했던 마지노선이었지만,

끝내 그 선을 지키지 못한 채로 준이는 잔뜩 흥분하여 신음하였다. 지난 번 꿈에 나온 쇼를 다시 불러내어 하염없이

손을 놀리고 머릿속으로 그를 희롱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쇼를 소유해야만 했다.

그래야 쇼의 곁에서도 제 추하기 짝이 없는 욕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생각보다 준이 택했던 그 방식은 도움이 되었다. 꾹꾹 눌러 담던 그 욕구를 그리 만족스럽진 못하더라도 해소할 수 있게 되자

평소엔 별 다를 바 없이 쇼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가정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두 가정이 만나 하나의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준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난 후부턴 두 분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맞벌이 부부인 탓에 각자의 스트레스가 큰데 서로 맞지 않는

생활 패턴에 싸우는 일이 잦았었다. 잦은 갈등이 빚어내는 감정의 골은 쉽게 메꿔질 생각을 안했고

결국 집안은 살얼음판이 되었다. 결국 쇼가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모는 입을 열었다.

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라설 것이라고.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쇼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고 부모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틈에서 준이는 입가의 미소가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더 이상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될 예정이었다.

 

 졸업식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봄.

 

 이 얼마나 좋은 계절인가. 한 해의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또 시작하기에 최적의 계절이지 않나.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들은 그 끝과 시작의 점을 축복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준이는 쇼가 안겨준 꽃다발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졸업 축하해.”

 

 “응.”

 

 “......이제 집에서 볼 일도 얼마 안 남았네.”

 

 “그러게. ......쇼군.”

 

 “응?”

 

 “부모님 헤어지셔도, 연락 안 끊을 거지.”

 

 “뭐야. 당연하지. 넌 끊을 생각이었어?”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이제 같은 마츠모토가 아니니까. 이젠, 마츠모토와 사쿠라이니까. 가족으로서의 연은 끝났다.

이젠 적어도 꾹꾹 눌러 담고 있기만 할 필요는 없단 뜻이었다. 넘칠 까봐 조마조마해 할 필요도,

그 넘침을 들킬까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음침하게 숨어 애타게 갈망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쿠라이의 어머니가 사진이라도 찍으라며 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마츠모토와 사쿠라이는 나란히 서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마츠모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호롱달] @horong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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