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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겨울

​니노미야 카즈나리 X 사쿠라이 쇼

 곤히 잠들어 있던 사쿠라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잠이 가시지 않는지 눈을 끔뻑이며 숨을 크게 들이 마시던

사쿠라이가 별안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제의 기억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술기운으로 토막 나 있는 기억들은 분명 사쿠라이가 뜨거운 밤을 보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칠게 맞닿은 입술, 등을 쓸어내리던 손길, 그리고......

 

 

 “......미친.”

 

 

 자신을 내려다보며 몸을 움직이던 니노미야까지.

 

 

 

-

 

 

 

 어제의 밤을 증명이라도 하듯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급히 실내복을 제 몸에 끼워 넣은 사쿠라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인기척을 살폈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밀려들어오는 안도감에 사쿠라이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하룻밤의 실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면 될 일 아닌가.

둘 다 꽤 많이 마신 상태였으니까. 술기운에,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둘 사이에 흐르던 그 복잡 미묘한 감정들에 휩쓸려 둘 다 실수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사쿠라이가 그대로 다시 침대로 가 몸을 뉘었다.

오늘이 주말임을 다행으로 여기며 조용히 눈을 감고 밀려오는 수마에 저를 맡겼다.

 

 

-

 

 

 제 지난 청춘을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사쿠라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니노미야 카즈나리’.

 

 어리숙했지만 그렇기에 더 찬란했던 10대의 끝과 매 순간이 치열했던 20대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이 있다는 건,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 시절의 나와 함께 해주고, 그 때의 나를 온전히 기억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사쿠라이에겐 하나의 징표인 셈이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슴 속으로만 추억하고픈 사람이기도 했다.

미성숙했기에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지만, 감정에만 충실하다보면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못 보고 지나친 것들은 결국 실수를 부르기 마련이었고 그 끝은 항상 상처로 가득했다. 그래서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와의 재회를

그저 묻고 넘어가고 싶었다. 예쁘게 잘 포장해서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트로피로 소중히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동창회였다. 근 몇 년간은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었다. 혹여나 니노미야와 마주해야할 까봐. 회피였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과연 어떤 표정으로 어떤 문장을 내뱉어야할지를 모르겠어서, 차라리 피하기를 택했다. 실수가 두렵고

누구 하나라도 상처 받게 되는 상황이 싫은, 나약한 어른의 한심한 습관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엔 정말 다 모여야 한다며 사쿠라이의 스케줄이 조금 어렵다면 사쿠라이의 시간을 고려해서 날을 잡겠다는

주최의 결단 어린 말에 결국 사쿠라이는 항복했다. 내심 니노미야가 자리에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 니노미야!”

 

 

 물론, 이 세상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사쿠라이는 그 점을 오늘 뼈저리게 다시 느껴야 했다.

 

 

 “야야, 너 여기 앉아라.”

 

 

 적어도 제 주변자리 놈들은 가만히 있어주길 바랐는데, 그것 또한 욕심이었나 보다. 둘이 맨날 붙어 다니지 않았냐고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창 놈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어릴 때의 말랑함은 사라지고 제법 날선 어른의 향기를 잔뜩 품기며, 제게 인사해오는 니노미야를.

 

 

-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의 눈을 정말 좋아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막 입학한 고등학교에서의 첫 짝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다른 학교를 가거나 같은 학교가 되었다 해도 다른 반이어서 사쿠라이는

반에 친구가 없었다. 사쿠라이 같은 학생들이 많음을 고려한 담임이 제안한 것은 제비뽑기였고

그렇게 사쿠라이는 니노미야를 처음 마주했다.

 

 아직도 그 순간만큼은 기억이 생생했다. 무슨 사진이라도 찍어둔 것 마냥, 사쿠라이의 머릿속엔 니노미야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았다. 빛바래지기는커녕, 더 선명하고 반짝거리며 사쿠라이에게 끝없는 여운을 남기곤 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교실 속, 그 햇빛을 머금고 갈색 빛이 도는 그 눈을, 제 이름을 알려주며 씨익 올라가던 그 입꼬리를,

잘 지내보자며 내밀어졌던 그 손을. 사쿠라이는 그 모든 걸 아주 세세하게도 담아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가까워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니노미야도 사쿠라이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첫 짝이 된 김에 이것저것을 같이 하다 보니 어느 새 반 아이들에게 니노미야와 사쿠라이가 함께 있는 모습은 당연한 것이 되어있었고 그건 서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름날의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하던 두 손을 기억한다. 옆에 있는 존재를 끝없이 갈망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느라 결국 닿지 못하고 스쳐지나간 두 손 또한 기억한다. 그마저도 쑥스러워서 얼굴을 붉히고 상대의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했던 어린 날의 니노미야와 사쿠라이는 참 앳되고 풋풋했다.

 

  

 -

  

 

 니노미야의 그 앳되던 모습이 지금의 니노미야와 오버랩 되면서 사쿠라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니노미야는 그대로였다.

사쿠라이가 좋아하던 그 모습 그대로. 다만 분위기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재미없고 별 거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그냥, 공백을 주기 싫어서 서로의 근황만을 주고받으며 쓸 데 없이 가벼운 말이나 내뱉는, 그런 대화. 동창회를 갖는 의미와는 달리 그저 현재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사쿠라이에게도,

니노미야에게도 과거의 일은 암묵적 비밀이었으니까. 서로가 지켜야할 선이었다.

 

 어색할 틈이 없던 사이였는데. 둘 사이의 고요함마저도 즐거웠던 사이였는데. 영원한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둘만큼은 영원하리라고 허황된 꿈을 꾸던 시절이 분명 있었는데. 결국 꿈은 꿈일 뿐이었고

사쿠라이는 그 꿈에서 깨어난 지 오래였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아, 응.”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평소보다 급하게 술잔을 기울였나보다. 속이 뜨거워지며 술기운이 오르는 것을 여실히 느낀 사쿠라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니노미야는 그런 사쿠라이를 잡지 않았다. 어쩌면 니노미야도 속으론 안도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고.

 

  겨울의 찬바람은 열기가 오르는 제 몸뚱아리를 식히기에 적절했다.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은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사쿠라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연말이긴 한 모양이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했고 그런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하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지만 사쿠라이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다 태워진 담배를 끄고 또 다른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을 때, 불을 건네 오는 이가 있었다.

 

 

 “......어, 니노미야 군.”

 

 “담배는 안 할 줄 알았는데.”

 

 

 니노미야의 물음에 어깨를 살짝 으쓱인 사쿠라이가 다시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사쿠라이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니노미야가 제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담배를 다 태워갈 때쯤,

침묵을 깬 건 니노미야였다.

 

 

 “......나 안 보고 싶었어?”

 

 “뭐?”

 

 

 사쿠라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얘 지금 뭐라는 거야?

 

 

 “나는, 보고 싶었는데.”

 

 

 사쿠라이는 여태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니노미야의 눈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그 눈빛은 니노미야가 전혀 가볍게 던진 말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 태워진 담배꽁초가 힘없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사쿠라이는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니노미야와 눈을 마주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 두 눈동자는 한없이 곧고 흔들림이 없어서, 사쿠라이는 혼란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본 니노미야의 눈빛과는 확연히 달라서. 그럼 이제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왜? 왜 지금에서야?

 

 

 “......갑자기 무슨-”

 

 “너는.”

 

 “......”

 

 “너는 나 안 보고 싶었냐고.”

 

 

 진득하게 얽혀오는 니노미야의 눈빛에 결국 사쿠라이가 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눈은, 반칙이잖아.

사쿠라이는 늘 그 눈빛에 약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그것이 달라질 리가 없었다. 사쿠라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그리고 아마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속에서부터 뭔가가 들끓기 시작했다. 지금 니노미야는 명백히 선을 넘었다. 사쿠라이가 동창회 내내 니노미야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선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사쿠라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니노미야에게

단 한 마디라도 할 말이 없었겠는가. 니노미야의 얼굴을 보고 정말 감정적 동요가 안 일었겠냐는 거다.

 

 

 “......그게 중요해?”

 

 “어. 중요해.”

 

 “왜-.”

 

 “......”

 

 “아니, 아니야. 말 하지 마. 안 들을래.”

 

 

 사쿠라이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유를 들으면 어쩐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기껏 꽁꽁 정리해뒀던 지난 감정들이 닫아뒀던 문을 박차고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려는 사쿠라이의 손을 니노미야가 꾹 잡아오지만 않았다면,

아마 사쿠라이는 그대로 그 감정들을 삭힐 수도 있었으리라.

 

 

 “......미안해.”

 

 

 그리고 들려오는 니노미야의 사과에 결국 사쿠라이는 터져버렸다.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야? 간만에 만난 김에 나란히 앉아서 뭐, 속 편하게 옛날 일이라도 다시 얘기하자고?”

 

 “......쇼쨩.”

 

 “그렇게 부르지 마.”

 

 

 한 때 사쿠라이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다. 그리고 혹여나 다가올 수도 있는 그 사랑의 끝은, 꼭 아름답게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마음먹었었다. 사랑에 대한 낭만이 가득할 때였으니까. 이상을 좇다보면 결국 그 비스무리한 곳에라도 도달하지 않겠냐는 것이

사쿠라이의 지론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었다. 그게 세상이었다. 영화처럼 아련한 효과가 들어가지도,

배경음이 삽입되지도 않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던지 간에 결국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은 채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추한 이별만이 있었을 뿐이다.

아쉽지만 그게 니노미야와 사쿠라이의 사랑의 끝이었다. 영원하지도 않았고 그 끝의 마감이 예쁘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긴 했다. 다만 사쿠라이는 지금보다 더 이상을 좇는 것에 진심이었을 뿐이고

니노미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최선을 찾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사쿠라이는 겁이 없었고, 니노미야는 그렇지 못했다.

 

 남자 두 명의 사랑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 차갑기 마련이었다. 학창시절에야 우정이라는 울타리 뒤에

숨을 수 있었지만, 성인이 되고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그게 조금 힘들었다. 더군다나 사쿠라이는 그들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둘만의 사랑으로 남기기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커다란 존재로 자리매김 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탓할 생각은 없었으나 니노미야는 그로인해 돌아올 상처가 신경 쓰였다.

자신은 둘째 치고 사쿠라이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게 두 사람의 갈라섬의 시초가 되었다. 22살의 두 사람은 덜 다듬어져 있었고 그로인해 모난 부분으로 서로를 찌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기엔 각자의 생각이 너무 확고했다. 결국 먼저 이별을 뱉은 건

니노미야였다. 의견 대립으로 인해 자잘한 다툼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나름 대화로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끝은 결국 흥분하여 서로에게 화를 내고 돌아서는 두 명이 있었고, 행복하자고 같이 만들어둔 공간에서는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만이 냉랭하게 맴돌았을 뿐이었다.

 

 그 때의 니노미야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더 상처 받을 바엔 좋은 추억들로 갈무리하는 게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한 존중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그것이 사쿠라이에게 큰 상처가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동그랗고 예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었다. 니노미야는 차마 그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흰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에, 5년간의 연애가 끝이 났었다.

 

 그걸 끝으로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살길을 찾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그 시간동안 니노미야나 사쿠라이나 연애를 안 해 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서로와의 연애 기간을 넘길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쿠라이는 화가 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별을 먼저 뱉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달콤한 말을 속삭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아올린 그 모든 것이 사쿠라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그리고 어떻게 그 모든 걸 정리했는데.

이제와서 니노미야가 제 손을 붙잡는다고 해도 사쿠라이의 입장에선 달가울 것 하나 없었다.

 

 

 “나 너랑 더 할 말 없어. 다 지난 일이고, 나는-”

 

 

 사쿠라이는 니노미야에게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했다. 살짝 비트는 순간에 니노미야가 제 손에 힘을 줘 당겨버리는 탓에 실패했지만. 갑자기 너무 가까이 서게 된 탓에 사쿠라이의 사고회로가 전부 멈춰버렸다. 아마 겨울의 이 찬바람이 아니었다면 얼굴에 잔뜩 열이 올랐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익숙한 체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것이 기분이 묘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까부터 꾹꾹 눌러 참고 있던 그리움이 터질 것 같아서. 밀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쿠라이는 니노미야를 밀어낼 수 없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니노미야의 시선을 더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사쿠라이를 눈치 챈 것인지 니노미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도어락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에 선잠에 빠져있던 사쿠라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불현 듯 누구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에 사쿠라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일어났어?”

 

 

 익숙하게 제 집으로 들어오는 니노미야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사쿠라이가 다급히 니노미야를 막아섰다.

 

 

 “뭐, 뭐야 너? 간 거 아니었어?”

 

 “뭔 소리야. 식탁 위에 메모 못 봤어?”

 

 

 시선을 돌리자 식탁 위에 정갈한 글씨로 ‘잠깐 일이 생겨서 나갔다 올게.’ 적혀있는 메모지가 있었다. 이걸 왜 이제 봐서는..!!

 

 

 “못 봤네.”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어제 너가 누르는 거 봤는데.”

 

 

 샐쭉 웃어 보이는 니노미야에 사쿠라이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제 공간에 니노미야와 이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당장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고 있는 어제의 밤만 해도 죽을 맛인데, 이렇게 니노미야와 마주 서 있기까지 하려니까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뭐라고 입을 열어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야하나 싶어서 사쿠라이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적을 깬 건 니노미야였다.

 

 

 “......우리 얘기 좀 할까.”

 

 

 

 

==

 

 

 

 

 긴 시간 대화를 했다.

 

 어린 날의 미성숙함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사과와 결국 서로를 놓쳐버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하여.

계속해서 부딪혔던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욕심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욕심이 가득한 채로 헤어졌으니 미련이 짙게 남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의 연애를 위해 헤어짐을 택했노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결국 겁먹은 니노미야가 비겁하게 군 것 뿐이었다.

상처를 받더라도 함께였어야 했다. 진정으로 이 연애를 위한다면 끝까지 사쿠라이의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음에 니노미야는 후회했다. 그래서 더 밀어붙였다. 사쿠라이가 화낼 걸 알면서도, 세게 나갔다.

다시 놓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쿠라이의 망설임을 캐치했을 땐 정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다시 제 품에 사쿠라이를 안았을 때, 느껴지는 그 체온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도.

 

 니노미야는 사쿠라이의 손을 끌어와 잡았다. 사쿠라이는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틀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바깥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때 그 날처럼.

 

 다시, 겨울이었다.

[호롱달] @horong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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