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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니노미야 카즈나리 X 사쿠라이 쇼

부은 게 분명한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어젯밤 술을 마신 탓이다. 오랜만에 내가 술을 마신 것인지 술이

나를 마신 건지 아니면 그냥 술에 절여진 건지 모를 정도로 좋다고 들이부었었다. 하필이면 어제 하루 종일 일진이 사나워

위로가 필요했던 탓이었다.그렇게 위로하고자 마셨던 술은 나를 배신하고 속을 어지럽히고 울렁거리게 만든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진 울렁거림에 저절로 구겨지는 미간이 느껴졌다. 아, 주름 생기는 데.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짜증이 솟구칠 정도로 울리고 있는 내 취향이 절대 아닌

이름 모를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벌써 몇 곡째인지도 모를 정도로 울리는 핸드폰을 잡아들고

옆에 누운 녀석에게 건넸다. 말이 건넨 거지 얼굴에 얹어 주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녀석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단하다 진짜.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을 누군가가 불쌍했다.그리고 녀석의 얼굴 위에서 울리는 핸드폰은 이 녀석을 깨우지 않는 한 영원히 울릴 것만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니노미야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술 마신 다음 날 깨우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더 이상의 고막 테러는 사양이란 말씀

 

“카즈 일어나 전화 좀 받아.”  

 

술의 힘을 받아 아주 깊이 잠이 들은 니노미야는 흔들어 깨우는 내 손길에 드디어 눈을 떴다. 나보다 더 인상을 쓰면서

제 핸드폰을 건네 받고는 눈만 꿈뻑거린다. 그 사이에도 니노미야의 핸드폰은 끊기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제발 좀 받아 안 그래도 머리 울리는 데 시끄러워 죽겠어"

"으.. 귀찮은 데....."

자다 깬 그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고 갈라졌다.

"난 미치겠어"

한껏 노려보며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내 목소리에 뭐가 좋은지 실실 웃던 녀석이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던가 무슨 일이야라는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니노미야는

 

"잘 거야"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울리던 전화를 생각하면 내가 다 민망할정도였다. 그리고 팔을 뻗어 내 어깨를 끌어당겨

안는다. 그 모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어이가 없었다. 니노미야의 마른 품에 안긴 채 그의 냄새가 배어있는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꼴이라니 남들이 보면 기절할만한 모양새가 새삼스레 웃겼다. 일어나 침대 밑에 널브러져 있을 옷을 챙기고

집에 가야하는데, 이제는 손으로 등까지 토닥거려 주는 니노미야의 품이 쓸데없이 편했다.

이 상태면 또 밤늦게나 집에 갈 것이 뻔했다. 아.. 잠들면 안 되는 데 

 

-

 

등을 토닥여 주던 니노미야의 손길 덕에 결국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다 구겨지고 어젯밤 실수로 커피까지 쏟아버린 내 옷을 그대로 입을 수 없어

한참 전에 샀던 유행이라곤 다 지난 티셔츠를 건네 받았다. 

 

"다른 거 없어?"

"왜 그거 네 거잖아"

"이게 왜 내 거야 네 거지. ."

"맨날 네가 입으니까. 네 거지"

"하, 알았어 내 거니까 제발 좀 버려줘"

이 집은 온 통 내 물건 투성이었지만, 이 티셔츠 아니었다.

자기 것이면서 늘 내 거라고 우기는 뻔뻔함도 어이없었지만 이젠 정말 버려주었으면 했다.

 

"싫어 아직 입을 만해"

"누가 짠돌이 아니랄까 봐"

 

성과 없는 말씨름 끝에 결국 받은 티셔츠를 입었지만 영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나와 달리 니노미야는 의기양양하다.

 

"어차피 입을 거면서 맨날 싫데, 입 집어넣어"

 

라고 말하며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나는 그런 니노미야를 살짝 노려 보며 소파에 기대앉았다. 니노미야가 이 집에 이사할 때 내가 선물했던 소파였다.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내 선물을 받을 때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던 그때의 니노미야,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마냥 귀엽지 않은 니노미야를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처럼 서로가 모르게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행하는 행동에서 나는 가끔씩 예전의 우리를 떠올리고는 했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에게도 찬란하고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웠다가도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처럼 굴었던. 서로 사랑을 속삭이기 바빴고

사랑하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던 그런 사랑을 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은 지났지만 헤어진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또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가끔 니노미야의 집에서 그 시절의 우리처럼 그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지금처럼 말없이 니노미야를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린 아직 서로가 필요 한 것일 수도 있었고 서로에게 너무 녹아들어

떼어낼 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마치 버릇과도 같은 그런 것,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다시는 없을 예외일 거라는 확신이 늘 있었다.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인상 쓰고 있어, 미간에 주름잡힌다니까"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우며 니노미야가 내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누르며 문질 거린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인상을 쓰고 있던 나를 못마땅해하며 담배를 비벼 끈다.

 

"너 그거 진짜 안 좋은 버릇이야. 생각 깊어지면 인상 쓰는 거"

"내가 일부러 그러나"

몇 년째 듣는 잔소리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을 어찌하냐며 항의를 하자 니노미야는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주방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뒤지던 그가 곧 익숙하게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평소에도 소식하는 그답게 니노미야는 커피로 해장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식사를 차리는 이유는 오로지 나였다. 항상 든든하게 먹어 해장하는 나를 위한 것. 헤어진 애인에게 해장까지

해 주는 자상한 니노미야.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기다리는 나. 남들은 이런 우리 사이를 뭐라고 생각할까.

헤어진 주제에 아직도 붙어먹는 사이? 할리우드 뺨치는 쿨한 사이?.

아니 애초에 우리가 사귀었던 걸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쇼 뭐해?, 밥 다 됐어.”

"아, 응 지금 갈게"

"너 오늘 이상해 뭘 계속 생각해"

"별거 아냐, 잘 먹겠습니다"

오늘따라 쓸데없이 감상에 젖은 나를 다 차려진 식탁으로 부르며 그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젓가락을 들자 다 내린 커피를 들고 그가 내 앞에 앉는다.

아직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니노미야는 기다릴 것이다. 늘 그랬듯이.

 

-

 

그가 차려준 밥은 맛있었다.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니노미야는 정말 솜씨가 좋다. 

그렇게 만족한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는 내 몫이다. 니노미야의 밥 덕에 가라앉은 속은 편안하다.

콧노래까지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내가 뒷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있던 그에게 기댔다.

자신의 어깨에 기댄 내 머리를 그가 쓰다듬고 나는 하품을 하며 한가로이 뉴스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카즈군 나야 아직 자?”

 

 오후의 느긋함을 깨는 초인종 벨 소리와 함께 녀석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이번에 새로 사귄 그의 연하 연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니노미야가 내 눈치를 봤다. 

 

"뭐야, 그 얼굴 네 집이잖아"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미안해서 인지 짧게 욕을 하며 일어난 그가 현관 문을 열자 처음 본 그의 연인이 들어왔다.

웃으며 들어오던 그가 나를 보고 당황해하며 인사를 건네던 순간 숨 쉬듯 당연했던 그 모든 게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내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면서 나와 헤어진 후 몇 번의 연애에도 누구도 집에 들이지 않겠다던 니노미야.

그런데 오늘 니노미야의 연하 연인이 집으로 찾아왔다. 괜찮았던 속이 갑자기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기분이 묘했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이내 고갤 돌 리며 일어났는데 왜 연락 안 했냐며 묻는 그 목소리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까지 든다. 대충 겉옷을 집어 들었다. 인사는 나중이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는 게 내겐 우선이었다.

들고 있던 옷을 대충 걸치고 현관으로 나서자 제 연하 연인을 소파에 앉히고 그가 다가왔다.

그리고 니노미야의 등 뒤로 그의 연인이 우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게 보였다.

 

   “방해되겠다. 나 갈게”

“조심히 들어가 전화할게.”

"내가 애냐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문을 나섰다. 문틈 사이로 그의 연인이 내가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완전히 문이 닫혀

니노미야의 대답은 알 수 없었다. 누구라고 할까 너는. 헤어진 애인? 오래된 친구?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아는 사람?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니노미야의 연인이 우리 사이를

눈치챘을까?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머리는 복잡하고 속은 타들어 가는 데 코트 속 반팔 티셔츠에 안 어울리는

바람이 춥다. 그가 건넨 이 유행 지난 티셔츠가 커플 티셔츠인 게 또 괜히 서럽다. 역시 진작 가져다 버릴 걸 그랬다.

이 까짓 게 뭐라고 몇 년 동안 안 버리고 있던 것인지 버리려고 할 때마다 뜯어말리던 니노미야가 원망스럽다.

나는 혼자 청승떨고 있는 데 녀석은 연인과 시시덕거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화도 난다. 이럴 거면 아침에

끌어안지나 말지. 밥은 또 왜 차려줘서는 사람을 서럽게 만드냐고. 정말이지 헤어진 지 3년이나 된 예전 애인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은 끔찍하게 싫었다. 하지만 기어코 흐르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꾹꾹 눌러 참아 봤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막을 수 가 없었다. 쪽팔리게도 나는 길거리에서 니노미야 때문에 눈물이 나 질질 짜고 있었다.

바람이 유난히 차다 싶더니 어느덧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나는 니노미야의 연인 생각이 생각나 순간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러면 안 됐었다 내 모든 게 구질구질했고 엉망이 되었다.

이게 다 쓸데없이 예전 일이나 떠올리던 내 탓이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이나 하고 다닌 내 잘못이다.

언제나처럼 니노미야는 나를 위할 거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하다고 자만했던 내가, 혼자 변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센] @sen_ss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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