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n Three
아이바 마사키 X 사쿠라이 쇼
1.
사쿠라이는 어린 시절부터 여름방학이 되면 며칠간은 별장에 가 있곤 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별장.
벼랑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높은 곳에 있어 바닷가가 한 눈에 보이는 별장이었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식사도 하고 게임도 하고
놀기도 하는 그런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방학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일기장에는 그 별장 이야기가 한 번도 빠짐 없이 나왔다.
모든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적어 내려갔다. 동생과 다툼이 있었지만 화해를 했었던 것, 가족들끼리 해변으로 내려가 운동도 하며
아버지를 따라 고무보트를 타고 좀 멀리도 나가봤던 것, 이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 얇고 커다란 노트 한권에 전부 담아냈었다. 딱 한 이야기 빼고. 모든 것을 담아냈던 일기장이었지만, 사쿠라이의 기억 속 소중한 추억 하나는 담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그 곳에서 만난 친구의 이야기였다. 정말 운명같이 만났던 것 같다. 살짝 우중충한 날, 집에 있겠다는 가족들 사이를
빠져나와 바람을 쐬겠다며 혼자 해변에 내려갔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 치곤 평소보단
멀리 갔지만 사쿠라이의 생각보단 그리 멀지 않았던 바위들이 엉켜있는 곳으로 끌려가듯이 무의식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때마침 사람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 바위 사이를 짚고 들어가 봤더니 사람이 살짝 평평한 바위 위에 쓰러져있었다.
아니,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상체는 완벽하게도 사쿠라이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하체는 멀쩡히 있어야 할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그냥, 물고기의 것이었다.
희미하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아 부서지듯 비치는 비늘들. 정말 사쿠라이가 생각하는 딱 그것이었다.
"...인어?"
사쿠라이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있던 인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손가락이 까딱거림과 동시에 등뼈가 움직이는 것이 보여 한 발자국 물러났더니,
정신을 차리는 건지 인어의 목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인어가 원래 밖에서는 숨을 못 쉬는 존재였나 싶어 사쿠라이는 인어의 상체를 힘겹게 들어 올려 바로 옆의 물가로 밀어 넣었다. 공기 방울 몇 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서야
그게 분장일 수도 있다는 것을 사쿠라이는 깨달았다. 아, 어쩌지. 머리가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자신이 그를 구하러 가기엔
자신은 바닷속에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사람을 끌어 올릴만한 수영실력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사쿠라이는 급하게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덜컥, 열고 나서 911을 꾹꾹 누른 뒤 전화버튼을 눌렀을 때였을까,
무엇인가 확하고 튀어나온 탓이 옷에 바닷물이 다 튀기고 나서야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었다.
"와, 죽을 뻔했어!"
"너... 뭐야?"
"나?"
인어지, 너가 본 대로. 그래서 날 바닷속으로 밀어 넣은 거 아니야? 해맑게 미소 지으며 눈을 마주하는 그, 인어를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바위들 사이였던지라 다리가 정말로 풀려 엎어졌더라면 분명히 어디 한 군데는 다쳤으리라,
사쿠라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비척이며 바위에 조심해서 앉자, 인어는 팔짱을 끼고는 사쿠라이가 앉은 바위 위에
살포시 팔을 얹어 상체를 기댔다.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듯하였다.
"나 안 무서워?"
"무서울 게 뭐 있어... 그냥 인간이랑 별반 다른 것도 없으면서."
하지만 인간들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가 노래해서 꼬셨다는 이야기도 있고,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 눈물이 진주라는 이야기도 있고... 인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들었던 자신들의 설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물론 '인어공주'의 내용만 알고 있던 사쿠라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딱히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인어가 겁이 나지 않더냐는 말을 했을 때는 정말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반은 물고기인 사람을 굳이?
사쿠라이에게는 반이 '물고기'라는 점보다 반이 '사람'인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무섭지 않았다. '사람'이었으니까.
"딱히."
"헤... 아, 고마워! 어... 그러니까..."
인어는 신기하다는 듯이 사쿠라이를 쳐다보다가 번뜩 자신을 물에 밀어 넣어준 게 떠올랐는지 고맙다고 인사했다.
사쿠라이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 뒤에 지칭할 단어를 찾지 못한 건지 머뭇거리면서. 눈가를 찌푸리기도 하고,
입이 벌어지기도 하며 '나 단어를 찾고 있어요'를 티 내는 인어는 그냥 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인간!"
"사쿠라이."
"응?"
"사쿠라이 쇼."
그래서 사쿠라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다. 최선을 다해 고민하는 인어의 모습이 웃겼거니와,
자신도 인어의 이름이 궁금했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저 아이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생긴 것은 아시아 쪽이 확실한데, 생각과 다르게 유럽계 이름일지도 몰라, 같은 생각을 하며. 인어는 눈에 비해 큰 동공과
귀여운 입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 웃을 때도 나름 매력적이었는데. 사쿠라이는 인어의 모습 중
새까맣고 커다란 눈이 맘에 들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 것 같은 눈이었다. 블랙홀이 생각나는 눈.
아, 이래서 아까 들은 '인어가 사람을 홀린다'는 소리가 이거였나 싶기도 했다.
"아이바 마사키."
"에?"
"응?"
"그게 이름? 완전 이쪽이잖아."
"뭐가?"
사쿠라이의 예측은 보기 좋기 빗나갔다. 완전 일본! 유럽계라니, 그런 생각을 한 게 웃길 정도로 완전히 일본식 이름이었다.
물론 드문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완벽히 일본인이었다. 일본인? 일본인어라고 하기도 이상한걸.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쿠라이를 아이바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왠지 읽어보기라도 하겠다는 강렬한 눈빛이었다. 또는 맘에 안 든다는 눈빛이었을지도 몰랐다.
"왜, 내 이름 이상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이상해?!"
"아냐! 진짜 그게 아니라 너무 일본식이라서..."
아하, 마름모꼴로 입을 벌리고는 살짝 놀란 듯, 깨달은 듯한 표정을 하는 아이바의 표정이 귀엽게 느껴졌다.
아이바의 말로는 어디 이동한 적 없이 여기서만 살아서 그렇다고 했다. 여기서 얼마나 살았냐고 물었더니 그건 잘 모르겠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했다. 인간과 인어의 시간 체계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사쿠라이는 사소한 것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일단 아이바가 신기한 건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거였으니까. 물어볼 게 스멀스멀 머릿속을 점령이라도 하듯 늘어나기 시작했다.
2.
이렇게 친구가 된 아이바의 이야기를 사쿠라이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며, 가족에게도.
아이바는 나만 아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보고 싶어서, 여름을 항상 기다려왔다. 며칠 만에 이뤄진 우정이었지만
심장에 깊게 꽂힌 듯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잊을 만 하면 기억이 나는 아이. 멍하면 아른거리듯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
그게 바로 아이바였다. 결국 사쿠라이는 여름이 아니어도 시험이 끝나면 주말에 틈틈이 보러 가곤 했었다. 그 바위 근처에만 다가가면 어떻게 아는 건지, 잠시 기다리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면 아이바는 사쿠라이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위에 기대어 미소 지으며. 겨울에 갔을 때는 춥지 않냐며 목도리라도 둘러줘야 하나 싶은 사쿠라이였지만 지상의 온도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히려 더운걸 더 싫어한다고 하였다. 여름만 되면 따뜻해지는 바다는 괜히 지치는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바에 사쿠라이는 양심이 콕콕, 바늘로 쑤시듯 찔렸지만 잘 모르는 척 걱정하는 표정을 보냈다. 아이바를 위해서라도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몰래 하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곤 했다.
달빛이 비치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아이바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한 마리의 돌고래를 보고 있는 기분.
마음을 평안하고 여유롭게 하는 능력을 아이바는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몇 년이고 이어졌다.
사쿠라이는 이러한 아이바와의 우정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3.
아이바는 사쿠라이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사쿠라이가 잊어버렸다거나 바닷가로 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은 아이바였다. 바닷가를 찾아가도 나오지 않았다. 낮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도 아이바는 사쿠라이를 끝끝내 보러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못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도 했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조차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렸으나
함께하지 못했었다. 이렇게 끝 없이 기다리는 게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나서야 사쿠라이는 기다림을 스스로 그만둘 수 있었다.
쓰디쓴 2학년의 여름 끝자락이었다.
4.
사쿠라이는 기다림을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리움은 그만두지 못했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바람에 딱 한 번 시험을 망쳤던 적도 있을
정도로 사쿠라이는 아이바를 그리워했다. 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기다림을 포기하고 요 며칠간은 그랬다. 혹시나 그 아이가 자신이 기다림을 멈춘 이 순간에 찾아와 자신을 기다릴까 봐, 대부분은 그런 걱정이었다. 하지만 사쿠라이는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사쿠라이는 아이바를 기다리며 자신을 바위에 새겼으니까. 그리움이 잊히는 동안에도 사쿠라이는
가슴 한쪽 아이바를 기다렸다. 잊히지 않을 것 같던 그리움은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사진도, 동영상도, 전화도 아무 것도,
그의 흔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기억 뿐인 의존이었다. 어느새 사쿠라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3년 후의 일이었다.
5.
쉬지 않고 달렸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또 다시 삼 년이 지났을 때, 정말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연봉이 높을지언정 휴일이 적던 사쿠라이의 회사는 몸과 마음을 고장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힘들다, 지친다, 괴롭다,
바다에 가고 싶어. 그래서 무작정 휴가를 냈다. 기간은 3일, 바로 스마트폰을 켜, 차를 빌린 사쿠라이는 어렸을 적 자주 찾던
별장으로 달려갔다. 가족이 아니면 지인이라도 찾았던 별장이었기에, 그다지 사람이 오랫동안 방문 안 한 티가 나진 않았다.
그저 몸만 이끌고 온 사쿠라이였기에 짐도 없었다. 좀 있다 차를 타고 도시로 나가 필요한 것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쿠라이는 숨을 쉬고 싶었다. 차키도 빼지 않은 채 사쿠라이는 해변으로 달려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름이었기에 저녁이 다 되어감에도 해는 저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수평선에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내 쉬었다. 드디어 호흡을 하는 기분이었다. 물에 잠겨있다가 밖으로 나온 기분. 문득 아이바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도 호흡할 수 있지만 밖에서는 살 수 없는 아이. 처음 발견할 당시 그 아이는 자신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그래서였던걸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발이 바위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걷고 싶었지만
사쿠라이는 그만큼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겨우 걸어가 우뚝 서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6.
"쇼짱."
"...왜 이제 왔어."
"미안해, 가족 이사 돕다가 길을 잃어서."
"...다리는?"
"...길을 잃었는데 마법사를 만났거든."
"...마사키 답네."
"거짓말 아닌데."
"...언제 왔어."
"몇 년 전에. 바위에 '기다렸으니까, 기다려 줘'라고 쓴 거, 쇼짱이지?"
"...응."
"그래서 기다렸어. 더 기다릴 수도 있었어."
"바보야...안 오면 어쩌려고."
"난 거짓말쟁이여도 쇼짱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니까."
"...어서 와."
"다녀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