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幻想
열쇠가 잠긴 방 X 더 퀴즈쇼
에노모토 케이 X 카미야마 사토루
카미야마 사토루는 에노모토 케이를 안다. 적당히 마른 몸, 그 위에 겹쳐 입는 셔츠와 니트를. 검정색의 두꺼운 안경과, 그 밑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안경줄을. 그리고 어쩐지 모를 무감한 예민함을 알았는데, 그것은 안경 밑으로 보이는 에노모토의 눈매가 아래로 쳐진 것과, 수평을 그리는 눈썹 때문인 것은 아니였다.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의 탓이라면 조금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카미야마가 에노모토의 그런 성정을 알고 있는 것은 그보다는 조금 더 본능적인 직감, 에 가까운 어떠한 것. 겉에서 줄곧 지켜본 이들만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그런 류의 지식에 가까운 형태였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카미야마는 스스로의 생각에 검정색을 덧칠한다.
에노모토가 단정한 걸음으로 다가와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 걸음만큼이나 단정한 얼굴이여서,
카미야마는 순간 저번 주 자신을 붙잡고 오열했던 이가 그가 맞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오셨네요.”
“네.”
쟉년의 낙엽이 숨을 다 할 때부터 시작된 화요일 낮 2시의 예약, 따지자면 에노모토는 특이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였다.
정신과에 꾸준하게 상담을 오는 환자 중에서 늘 홀로 오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미야마가 맡고 있는 환자 중에서는 유일하다. 독선적. 카미야마는 손 끝으로 에노모토의 차트에 프린팅 된 활자를 더듬는다. 케이가 그렇게까지 독선적인 사람은 아닌데. 오히려 평범한 선에서의 상식 범위 내에 행동하는 사람이였다. 카미야마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는 환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에 절은 냄새를 풍기거나 어딘가 망가진 눈을 하고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입술 끝을 잡아 뜯곤 했기에, 카미야마는 당연하게도 첫 만남에서 에노모토를 보호자로 착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에노모토도 케이를 자신 앞 순서의 환자로 착각했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긴 하지. 점심시간이 막 끝난 다음의 첫 순서였기 때문에 성실하게도 예약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한 케이를 맞았던
카미야마는 평소의 그 화려한 머리를 단장하지도 못한 채 숙직실에서 방금 말린 머리를 하고있었다. 카미야마씨…? 드물게 당황한 낯을 하고 토해내듯 카미야마를 불렀던 에노모토는 빨리 오셨네요, 하는 카미야마의 말에도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저는, 에노모토 케이입니다. 더듬이며 이름을 뱉어낸 에노모토는 여상하게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는 카미야마를 보며 느리게 그 표정을 지워냈다. 여느 첫 상담이 그러하듯 에노모토가 뱉어낸 언어를 조각내 차트 위로 재조립하는 과정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는 카미야마에게 에노모토가 물었다. 카미야마씨는, 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되묻는 카미야마에 에노모토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아닙니다, 하고 돌아나섰다. 지금까지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살짝 내저어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낸 카미야마가 눈동자를 굴려 다음 단을 흝으며 차트를 보던 고개를 들었다.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운 환각과 환청….
“여전히 현실이 아닌 것들이 보이시나요?”
대답에 앞서 허벅지 위에 단정히 올려진 에노모토의 손이 움찔 떨렸다. 네. 뒤늦게 따라붙은 대답에 카미야마는 유려한 글씨로 호전없음, 하고 적어내리고는 그제야 서류철을 닫았다.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에노모토는 여전히 같은 표정을 하고 카미야마를 본다. 카미야마는 문득 에노모토의 환상이 궁금해진다. 일 년의 시간동안 반복해 들어온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에노모토의 이야기는 매번 조금씩 달라져서, 가끔은 그것이 외려 현실처럼 느껴지곤했다. 오직 환자와 의사라는 사무적인 관계로,
작년의 이 자리에서 처음 마주한 것이 분명한 에노모토 케이라는 사람을 오랫동안 알아온 것처럼.
그는 자신이 일본의 도쿄 종합 시큐리티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방범업체입니다. 시시티비를 설치하고, 관리하며
문에 잠금쇠를 달아주는. 에노모토씨는 그 일을 좋아했나요? 네, 좋아했습니다. 열리게 되어 있는 닫힌 것들 이였으니까요. 정확히는, 풀리는 순간들을 좋아했습니다. 자물쇠가요? 네, 그리고 해답이 정의내려지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음, 그러니까, 밀실 사건들을 해결했다고 지난 상담들에서 말해주셨잖아요. 네, 자문격으로.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들에서 밀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밀실을 깨트리는 일을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으면, 저번주에 전시회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사건을 이야기해주셨어요.
그, 필름을 이용한 살인사건이요. 네, 그랬죠. 음, 그리고,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밀실 사건 이야기도 해주셨는데요…,
“…끝까지 이야기가 마무리되진 않았지만요.”
첫 만남을 제외하고 언제나 예의 그 단정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적 없던 에노모토는 저번주의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환자가 이야기의 끝에 물기를 담는 것은 달리 놀라운 일은 아니였지만 그 대상이 에노모토였기에 달리 놀라운 일이 되었다.
아랫 입술을 짓씹듯 물고 카미야마의 손목을 아리게 잡으며 토하듯 울음소리를 뱉었던 에노모토는 곧 이어 더듬더듬 사과의 말을 뱉어내더니 상담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카미야마는 손목에 아직 녹색빛으로 남은 손자국이 혹시 보일까 손목을 움직여
가운의 끝이 제 손목을 온전히 덮을 수 있도록 했다. 카미야마는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던 시선을 굴려 에노모토를 향했고,
이어 보이는 단정한 얼굴에 천천히, 아주 깊게 숨을 내쉬었다. 에노모토가 말을 이으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할 말을 고르던 카미야마는 차트 겉에 적힌 날짜에 시선을 던졌다.
오늘로 꼭 1년이 되는 날이였다, 에노모토를 처음 마주한 가을로부터.
“…그랬죠. 말씀 드렸던 방송의 이름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어…, 네. 더 퀴즈 쇼…였던가요?”
저번주의 에노모토가 이야기를 했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제 기억속에 답이 있었기에 카미야마는 말을 이었다.
퀴즈를 맞추고, 상금을 타가는 프로그램이라 하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 단계까지 문제를 푸는 것에 성공하면, 참여한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셨고요. 잠깐만, 이 이야기를 저번주에 들었던가? 앞의 내용은 얼핏 들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프로그램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 들은 기억은, 단언코 없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자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않기에 카미야마는
의지와 무관하게 혀 끝에 오른 언어를 뱉어낸다. 디렉터는 혼마…, 였죠.
분명. 그가 MC에게 큐시트와 질문지를 건네줬고, MC는 그 질문을 도전자에게 묻고….
카미야마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에노모토 케이를 본다. 지난 주의 에노모토와 카미야마는 꼭 반대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노모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더 이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한번, 카미야마 사토루는 에노모토 케이를 안다. 날이 서늘해져 입고있던 흰 옷이 조금 춥게 느껴지는 가을의, 꼭 오늘 같은 날에, 에노모토는 멋대로 카미야마의 밀실을 풀고 들어와, 무릎을 굽혀, 저와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가을이라서,
하늘이 유독 높아서, 마침 근처 나무의 붉게 물든 잎이 고적하게도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러니까 온갖가지 아무래도 좋을 이유들
떄문에, 카미야마는 기꺼이 에노모토를 따라 밀실이었던 것을 빠져나왔다. 그러니까, 알고 있다. 에노모토 케이를. 그와 보낸 시간들을. 그렇다면 여긴 어디지? 속에 든 것도 없는데 무언가가 울컥이며 치미는 감각에 카미야마는 황급히 손을 들어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호흡이 가빴다. 자신의 것임에도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 봇물이 터진 듯 발 끝에서부터 차올라 끝내 온 뺨을 축축히 적셨다.
“-케이, 왜, 여기.”
에노모토 케이는, 미쳐버리기 직전에서야 카미야마를 찾았다. 눈을 감으면 보일 만큼 생생한데, 망상이나 헛것이 아닌 분명이 실존하는 기억임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눈을 떠보면 입고 있는 것은 사무소의 점퍼가 아닌 어색한 정장이고, 건물 밖으로 보이는 것은 도쿄의 거리가 아닌 외국의 높은 마천루들. 에노모토 케이임에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쿄 종합 시큐리티의 에노모토 케이와, 이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 온 에노모토 케이의 기억. 둘 중 하나는 환상이고 모순일 수 밖에 없음에도, 그리고 지금의 실재가 후자임에도 불구하고 에노모토는 둘 중 하나를 거짓으로 생각해야한다면 기꺼이 지금의 현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 무엇도 도쿄도의 에노모토를 증명해주지 않아, 흩어져감에도 더욱 뚜렸해져가는 기억의 파편을 붙들고, 매일을 생존해가던 에노모토가 끝내 정신과를 찾은 것은, 결국 자신이 전자의 기억을 부정하기 전 마지막 선이였다. 도쿄 종합 시큐리티의 에노모토 케이가 잠긴 밀실을 풀어
그 속의 남자를 찾아낸 것과 꼭 같은, 가을의 유독 청명한 하늘 밑에서, 에노모토는 카미야마를 찾았다.
여느 날과 같이, 추락의 궤적을 그리기 직전의 단풍들이 시리도록 붉은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