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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눈이 내린다면

고쿠센 X 야마다 타로 이야기

사와다 신 X 미무라 타쿠야

“연말에 시간 있어?”

빨대로 망고 주스를 휘휘 젓던 미무라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맞은 편에 앉은 사와다에게 물음을 던졌다.

사와다는 탄산음료가 든 잔에서 입술을 떼고 눈을 굴리며 일정을 더듬어 보았다. 연초에는 동생과 함께 신년 부적을

사러 가기로 했었지. 친구들과 잡은 약속은 연말이라고 보긴 힘들고. 사와다는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12월 마지막 주 내내 비어.”

흐응. 미무라는 콧소리를 내더니 망고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미무라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돌더니 금세 한데 뭉쳤다.

미무라가 고개를 들어올리고 사와다를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사와다의 손등을 검지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사와다가 의아한 눈을 하자 미무라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마지막 주 주말, 나한테 줘.”

며칠이더라. 사와다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가늠해보았다. 마지막 주 일요일이 12월 31일이었던가.

“상관없는데. 뭐 할 건데?”

“비밀. 싫어?”

사와다는 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손 끝을 장난스럽게 매만지다 끝이 일어난 손톱을 손으로 문질렀다. 미무라의 손장난을 가만 지켜보던 사와다가 별안간 미무라의 손에 제 손을 엮더니 확 잡아 끌었다.

예상치 못하게 손이 잡히자 미무라의 표정에 일순 당황이 떠올랐다가 금세 흐려졌다.

사와다는 턱을 괸 채 미무라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싫어?”

“치사해.”

미무라는 손을 확 당겨 제 쪽으로 가져갔다. 사와다는 팔에 힘을 풀어 미무라의 손에 일부러 딸려갔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손등을 만지작거리다 꽉 붙들었다. 사와다의 손등에 두드러진 뼈가 손 끝에 닿았다. 맞잡은 손에 시선을 집중한 미무라와 다르게 사와다는 여전히 턱을 괴고 미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미무라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사와다는 자연스러운 척 시선을 바깥으로 던졌다.

간밤에 내린 눈이 세상을 덮어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사와다는 고요한 바깥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닿은 건지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그 날 눈이 올 수도 있겠네.”

“그럴지도 모르겠네.”

미무라가 창밖을 흘끗 보고 고개를 돌렸다. 정 눈이 많이 오면 다른 방법을 구상해보면 되니까. 미무라가 다시 손에 시선을 두었다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어느새 창밖에서 시선을 거둔 사와다와 눈이 딱 마주쳤다. 사와다는 손 끝으로 미무라의 손등을 톡톡 건드리다

평서문 같은 의문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마지막 주 주말이야.”

“그냥.”

미무라는 빈 손으로 잔에서 빨대를 꺼내어 잔을 톡톡 건드렸다. 미무라는 사와다가 손을 빼낼까 싶어서 손에 힘을 조금 주어

손을 붙들었다. 맞닿은 온기를 놓고 싶지 않은 게 주된 이유였다.

“진부하잖아, 크리스마스는.”

사와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미무라는 다시 사와다와 눈을 맞추려고 했으나 사와다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를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미무라는 심통이 나서 괜히 테이블에 엎드렸다. 쟤는 나한테 관심도 없나. 치기 어린 생각이 머릿속에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사와다는 미무라의 그런 생각은 알지 못한 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사와다는 평소와 다름 없이 무심한 얼굴을 한 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타쿠야 손 되게 따뜻하네. 사와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좀체 미무라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신경을 이쪽으로 돌리려고 맞잡은 손을 제 쪽으로 확 당겼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턱을 괴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며 사와다가 테이블에 턱을 찧고 말았다. 미무라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고, 사와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부딪힌 턱을 문질렀다.

“아파……. 갑자기 뭐야.”

“네가 이쪽 안 보니까.”

미무라는 여전히 킥킥 웃어댔다. 사와다는 여전히 아픔이 가시지 않아 턱을 문지르며 곱지 못한 눈으로 미무라를 바라보았다.

미무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아직도 놓지 않은 손을 꼭 잡았다.

“그 주 금요일 29일이지. 그 날 연락할게.”

“안 받아버릴까보다…….”

미무라는 그 말에 그냥 웃어버렸다. 사와다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친구가 연락하면 바로 받을 사람이라는 걸, 미무라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꼭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미무라는 사와다에게 그냥 친구와 다른,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무라는 제 생각이 우습기 그지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웃었다.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진작 되었겠지. 벌써 되고도 남았겠지.

 

미무라는 휴대폰을 들고 소파에 파묻혀 몇 번이나 메일을 쓰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사와다에게 보낼 메일을 몇 번이나 고쳐 쓰고 있는 것이었다. 메일에 집중하느라 고용인이 두고 간 녹차엔 손도 대지 않은 바람에 녹차는 식어버린지 오래였다.

미무라는 그런 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메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그 시간이 무색하게 짧은 문장을 보내고 말았다.

 

[ 제목: 내일 집으로 와 ]

본문: 갈아입을 옷이랑 간단한 세면도구도 챙겨서

 

미무라는 휴대폰을 덮자마자 피로를 느끼고 손으로 눈을 덮었다. 길게 한숨을 쉬다가 문득 시선이 간 녹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바로 떼었다. 다 식었네, 벌써. 잔을 물리고 다시 소파에 파묻히듯 앉았다. 채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려 한쪽에 곱게 놓아둔 꽃과 도구를 챙겨 발을 옮겼다. 꽃꽂이를 하고 있다 보면 답장이 오겠지. 싫다곤 안 할 거야. 신은 늘 그랬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았을까. 아, 그건 싫은데.

미무라는 숨을 크게 내쉬며 손에 쥐고 있던 꽃을 내려놓았다. 겨울 분위기를 탄 건지, 아니면 그의 마음 상태가 무의식 중에 반영된 건지, 그가 이번에 완성한 작품은 어딘가 쓸쓸하고 고요해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미무라는 나름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한참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건 할아버지께 보여드려도 될 것 같아. 홀로 중얼거린 미무라는 남은 도구를 정리해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손에 닿은 휴대폰을 확인하자 어느새 사와다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 제목: 하루 분이면 돼? ]

본문: 너한테만 이틀 내어 주는 거야 타쿠야

 

너한테만. 미무라는 그 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짧은 문장을 몇 번 읽다가 빠르게 손을 놀려 답장을 적었다.

그냥 끌어안고 아무 말도 않다가 포기하는 건 미무라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숨기지 않고, 몇 번이고 당기고 끌어와야지.

사와다 신이 눈치채고 줄을 끊어버리기 전까지.

 

[ 제목: 기쁘네 ]

본문: 그런데 왜 나한테만?

 

미무라는 답장을 보내고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사와다의 답장은 아까보다 확연하게 빨랐다.

미무라는 바로 메일 알림이 뜨는 것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일부러 떠보는 문장에 너는 뭐라고 답했을까.

 

[ 제목: 그냥 ]

본문: 너니까

 

사와다는 메일에 답장한 뒤 침대에 풀썩 앉아 앞에 놓인 짐가방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미무라의 답장이 언제 오나, 하고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은지는 한참이 지났다. 괜히 흥미도 없는 게임을 하며 메일 알림을 기다렸다. 답장이 늦네, 타쿠야.

다른 할 일이 있나보다. 사와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뒤로 누워버리고 눈을 감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타쿠야를 기다렸더라. 왜 타쿠야만 이렇게 특별하게 대하는 걸까. 사와다는 제 머릿속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의문을 여럿 피워내다 생각을 털어내려

몸을 뒤척였다. 곧 답장 오겠지. 분명 농담으로 치부할 거야, 타쿠야라면. 그럼 뭐라고 답장하지. 나는 진심이라고 할까.

사와다는 옆으로 누워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거짓말을 하는 건 그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그러니 사와다가 미무라에게 한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그에게만 이틀을 할애한다는 말도, 너니까 그렇게 한다는 말도.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던 사와다가 느리게 깜빡이던 눈을 완전히 감아버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사와다는 눈도 뜨지 않고 휴대폰을 쥐었다.

다급하지 않게 눈을 뜬 사와다는 숨을 가볍게 내뱉고 메일을 확인했다.

 

[ 제목: 나니까? ]

본문: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 그건

 

누워서 메일을 읽던 사와다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불완전한 감정을 형태로 빚어 말로 뱉으려니 정확하게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와다는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마른 얼굴을 문질렀다. 사와다는 이제 의문마저 들었다. 내가 왜 타쿠야의 연락에 답장하는데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는 거지. 사와다는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보다가 써둔 메일을 다 지워버리고

새로 썼다. 타쿠야, 내가 널 좋아하나봐. 사와다는 완성된 문장을 한참 보다가 자신을 비웃듯 픽 웃어버렸다.

어울리지도 않는 문장을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내용을 전부 지운 사와다는 간결하게 답장을 새로 쓴 뒤 휴대폰을 가볍게 이불 위에 툭 던졌다.

 

[ 제목: 아무것도 아니야 ]

본문: 내일 오전에 갈게

 

사와다는 침대에 바로 누워 눈을 꾹 감았다. 휴대폰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진동하지 않았다. 사와다는 잠이 오지 않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어떻게든 잡념을 털어내고 잠들어보려 했으나, 자꾸만 그의 머릿속에서 미무라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와다는 몇십 분을 뒤척임으로 보내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하나 끝끝내 미무라의 생각은 털어낼 수 없었는지, 사와다는 잠들기 직전까지 미무라의 생각을 했다.

 

미무라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에서 깼다. 동이 막 터오는 바깥을 보다가 부스스한 머리칼을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같았으면 삼십 분이라도 더 눈을 붙였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미무라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시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 끝으로 이불만 만지작거리다 휴대폰을 가져와 잠금을 풀었다. 차마 답장하지 못한 사와다의 메일이 떴다.

미무라는 메일 임시저장함을 켰다. 사와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잔뜩 잠들어 있는 임시저장함을 훑던 미무라는 숨을 뱉으며 휴대폰을 꺼버렸다. 오전에 오겠다고 했으니 세 시간 후에는 사와다가 올 거라고 생각한 미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 짐가방을 살폈다.

챙기지 않은 물건은 없는지, 혹시 불필요한 것을 넣지는 않았는지 꼼꼼하게 가방 안에 든 물건을 확인했다. 미무라가 사와다 몰래 잡은 여행 계획은 완벽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직 사와다 신과 미무라 타쿠야만을 위한 계획. 미무라는 가방을 다시 정리한 뒤 가방 한쪽에 있는 노트를 집어들어 펼쳤다. 세세한 계획이 적힌 페이지 맨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2월 31일에 눈이 내린다면, 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오래된 독백을 미무라는, 책상에 놓여 있던 검은 마커펜으로 덮어 지워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트를 덮어

가방 앞에 넣었다. 이게 안쪽에 있을 줄 몰랐네. 그러면 안 되는데. 미무라는 괜한 독백을 흘리고 가방을 잠가 한쪽에 세워 두었다.

미무라는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손을 올려 제 왼쪽 가슴을 손으로 쓸었다. 그냥, 나라서 특별하게 대해주는 거라면,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면. 정말 내가 네게 특별한 사람이라면. ……좋아한다는 말 듣고 싶어, 신.

미무라는 파뜩 정신을 차리고 금세 고개를 흔들어 피어오른 생각을 전부 털어냈다.

미무라는 준비를 일찍 마치고, 방에서 꽃꽂이를 하거나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로 집어든 시집을 거의 읽어갈 때 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더니 문을 열었다. 미무라는 당연히 자신의 집사인 이소가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느릿하게 일으키며

느리게 고개를 돌렸으나, 문앞에 서있는 것은 사와다였다. 미무라는 놀라서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신?”

“왜 놀라? 네가 오라고 했잖아.”

사와다의 뒤로 이소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무라는 이소가이에게 눈짓을 보내고 짐을 넣은 가방을 챙겼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와다의 낯에 대고, 미무라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사와다는 그제야 눈치챘다.

아, 타쿠야가 또 뭔가를 꾸몄구나. 사와다의 낯을 보고 생각을 알아챈 미무라가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사와다를 지나쳐

먼저 발을 옮겼다. 사와다는 제 뒷머리를 헤집더니 일단 미무라의 뒤를 따랐다. 이제와 안 가겠다고 나설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고,

미무라의 장난에 장단을 맞추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뒷좌석에 두 사람이 모두 타자 리무진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미무라는 여전히 만족감에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고 있었고, 사와다는 팔짱을 낀 채 그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사와다는 우리가 어딜 가는 거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미무라가 그런 걸 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저 입을 다물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미무라는 그런 사와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신.”

“응.”

“아무것도 안 물어보네.”

사와다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미무라를 바라보았다. 사와다는 뚱한 낯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그대로 드러내곤 약간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내가 물어보면 대답은 해줄 거야?”

“글쎄?”

“그럴 거면서. 도착하면 깨워.”

사와다는 자세를 편하게 풀고 눈을 감았다. 미무라는 그런 사와다를 흘끗 보다가, 사와다를 흉내내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가 과속방지턱을 지나며 약간 흔들리자 사와다의 몸이 기울어 미무라의 어깨에 기댄 꼴이 되었다. 미무라는 사와다 쪽을 흘끔 보다가, 그의 팔을 끌어 자신에게 완전히 기대게 만들었다. 미무라는 그것으로 성이 안 차는지 사와다가 제대로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그의 팔을 살짝 당겨 손을 꾹 잡고,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무라가 더 움직이지 않자 아직 잠들지 않았던 사와다가 스르르 눈을 떴다. 사와다는 입꼬리만 올려 웃더니, 잠결인 척을 하며 미무라의 품에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사와다가 규칙적으로 숨을 내쉴 때마다 숨결이 미무라의 목을 간질였다. 미무라는 꼭 사와다의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싫지 않았다.

미무라의 눈에 공항 풍경이 점점 크게 들어왔다. 미무라는 사와다를 슬슬 깨워야겠다 싶어 사와다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으나,

사와다는 몸을 약간 비틀 뿐 눈을 뜨지 않았다. 미무라는 고개를 숙이고 사와다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신, 도착했어.”

사와다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잠기운에 젖어 있지 않았다. 꼭, 한숨도 자지 않은 이의 목소리였다.

“……타쿠야.”

“이제 일어나.”

“손, 놔줘.”

미무라는 그제야 생각이 닿은 듯 화들짝 손을 빼내었다. 미무라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킨 사와다는 미무라의 얼굴을 보더니

씩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사와다를 따라 내린 미무라는 입술을 꾹꾹 물며 이소가이에게 두 사람의 가방을 맡기고 사와다의 옆에 붙어 걸었다. 미무라는 사와다가 내내 자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사와다는 무심한 낯으로 공항을 둘러보며 대체 어딜 가려고,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미무라의 마음 같은 건 알지도 못한 채로.

미무라가 수화물을 맡기고 비행기 표를 발권해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금 타러 가면 딱 시간이 맞을 것 같아, 미무라는 티켓 두 장을 소중하게 쥐고 사와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사와다는 편의점에서 이온음료 캔을 사 막 비운 참이었다.

쓰레기통에 캔을 한 번에 던져 넣은 사와다 미무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몸을 그쪽으로 틀었다.

“지금 비행기 타면 될 것 같아. 수화물은 맡겨 뒀어.”

미무라는 그리 말하며 사와다에게 티켓을 건넸다. 사와다는 티켓을 받아 바로 행선지부터 확인했다.

깔끔한 폰트로 삿포로라고 적힌 글씨를 읽자마자 사와다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었고, 미무라는 장난스레 입꼬리를 당겼다.

“괜찮지?”

“안 괜찮다고 하면?”

“그럼 나 혼자 가?”

사와다는 미무라를 흘끗 보곤 한숨을 가볍게 쉬며 티켓에 적힌 게이트로 발을 옮겼다. 미무라의 장난에 휘둘리는 건 이제 사절이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미무라를 혼자 보낼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으니까. 미무라는 소리 없이 웃으며 사와다를 따라갔다.

사와다는 미무라를 흘끗 보더니 발걸음을 미무라에게 맞추려 조금 늦췄다.

고급스러운 좌석을 안내받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창가 자리인 미무라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았고, 사와다는 꽂혀 있는 잡지 따위를 뒤적거리다 흥미가 떨어진 듯 몸에서 힘을 풀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미무라는 잠시 몸을 편하게 풀더니

사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잠들면 깨워줘.”

“알겠어.”

미무라는 그리 말해놓고도 내내 잠들지 않았고, 사와다는 다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미무라의 손을 툭 건드리며 내리자고 손짓할 뿐이었다. 미무라의 머릿속에 리무진에서 사와다의 손을 맞잡았을 때가 문득 스쳐지나갔다.

삿포로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들은 것은, 일기예보 캐스터가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눈이 올 테니 외출을 삼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는 소리였다. 사와다와 미무라는 곧장 택시를 타고 미무라가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의 방은 너무 넓지 않고 두 사람이 쓰기 적당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방이었다. 침실에 놓인 침대 두 개를 눈으로 훑던 사와다가 왼쪽에 있는 침대에 앉자, 미무라는 자연스럽게 오른쪽 것을 차지했다. 답답한 겉옷을 벗고 히터를 틀어 얼어붙은 손과 뺨을 녹인

두 사람이 가방을 열어 짐을 풀기 시작했다.

“타쿠야, 내일 눈 온다던데. 많이 오면 못 나가겠지.”

“그렇겠지. 그래도 호텔 안에 이런저런 시설이 많아서 지루하진 않을 거야.”

“그럼, 내일 못 나갈 수도 있으니까.”

사와다는 가방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 맞으러 갈래?”

미무라는 마치 거절할 것처럼 픽 웃었으면서도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사와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카드키를 챙겼다.

“신, 겉옷은.”

“그냥 안 입으려고. 가자.”

미무라는 무어라고 말을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고 사와다를 따라갔다. 연말의 추위는 매서웠으나 사와다는 날카로운 바람에도

떠는 기색 하나 없이 먼저 건물 바깥으로 나섰다.

사와다의 머리카락에 눈 결정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무라는 사와다를 바라보다 자신도 바깥으로 걸음을 떼었다.

미무라의 뺨에 눈이 내려앉아 미무라는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호텔 근처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 깔린, 누구도 밟지 않은 흰 눈밭 위에 사와다의 발자국이 깔렸다. 사와다는 눈밭에 제 발자국을 한참 남기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흰 눈이 사와다를 덮을 듯 하늘에서 펑펑 내려왔다. 미무라는 사와다를 빤히 보다가 자신이 노트 맨 밑에 써둔 문구를 떠올렸다. 12월 31일에 눈이 오는데, 신에게 좋아한다는 말은 못 하겠지.

미무라는 자유롭게 눈밭을 돌아다니는 사와다를 보며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신은 자유롭구나.

“신, 감기 걸릴지도 몰라.”

“타쿠야.”

사와다가 미무라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하얀 눈이 사방을 덮은 탓에 온사방이 고요했고, 사와다의 목소리만

미무라에게 제대로 전해졌다.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미무라에게 가까워졌다. 미무라는 사와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사와다의 손은 사방을 덮은 눈만큼이나 차가워져 있었다.

“들어가자, 감기 걸릴 거야.”

“어릴 땐 눈밭에 천사 만드는 거 가끔 했었는데. 해볼래?”

미무라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사와다가 미무라의 손을 당겼다. 미무라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사와다에게 쏟아졌고,

덩달아 사와다도 중심을 잃는 바람에 두 사람이 함께 눈밭 위로 쓰러졌다. 미무라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와다가 미무라의 옷깃을 꾹 잡고 있는 바람에 움직임이 막혔다. 사와다가 미무라를 올려다보더니 고요하게 웃었다.

주변이 새하얀 탓이었을까, 미무라는 사와다의 웃음이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따뜻하네, 타쿠야는.”

“……네가 차가운 거야.”

미무라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옷을 잡고 있던 사와다가 힘을 실어 미무라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다시 눈밭으로 쏟아졌다.

사와다는 미무라 곁에 붙어 미무라의 머리칼에 잔뜩 묻은 눈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누구 때문인데.”

“사과 대신이야. ……춥다.”

두 사람의 거리가 평소보다 훨씬 가까웠다. 미무라는 사와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하늘로 돌려버렸고, 사와다는 그런 미무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눈이 미무라의 양 뺨에 내려앉았다. 12월 31일에 눈이 온다면,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린다면, 나는 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미무라의 머릿속에서 부유했다. 사와다는 손을 뻗어 미무라의 뺨을 적신 눈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이것조차 미무라가 아니었으면 해주지 않을 행동이었다. 사와다의 얼어버린 손이 뺨에 닿자 표정을 약간 찡그린 미무라가 사와다를 돌아보았다. 사와다는 일어나 앉아 옷에 잔뜩 묻은 눈을 털어냈다. 내가 아무래도 널 좋아하나봐.

사와다는 문장을 안으로 삼켰다. 문장이 너무 뜨거워서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추워.”

사와다는 미무라에게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다. 미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눈밭 위에 앉아있는 사와다에게 손을 뻗었다. 사와다는 상체에 묻은 눈을 마저 털어낸 뒤 미무라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미무라의 손은 사와다의 손에 비해 무척이나 따뜻했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체열으로 손을 녹여 주었다.

“감기 걸리겠다. 들어가자.”

느슨하게 풀린 손을 다시 붙잡은 사와다가 미무라보다 한 발 앞서갔다. 미무라가 잡힌 손을 움찔거리자 사와다는 고개만 뒤로 돌렸다.

“추워서.”

사와다는 담담하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와다는 분명하게 춥다고 느끼면서도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감각을 마주했다.

춥다는 말은 당연히 핑계였다. 미무라의 손을 잡고 싶어서 만들어낸,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핑계.

두 사람은 곧장 방으로 돌아가 얼어붙은 몸을 천천히 녹였다. 미무라가 창문을 덮은 블라인드를 걷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눈은 그칠 생각을 않았다. 원래 그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내일 사와다와 함께 삿포로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을 터였다.

미무라는 굵은 눈발이 쏟아지는 바깥을 하염없이 보다가 몸을 뒤로 물렸다.

“원래는 오늘은 호텔에서 보내고, 내일 돌아다니다 비행기 탈 생각이었는데.”

침대에 엎드려 있던 사와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미무라의 말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몸을 틀어 일어났다.

“반대로 하게?”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럼 호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 먹고 나갈까.”

미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겉옷을 챙겼다. 미무라는 옷걸이에 걸린 사와다의 겉옷을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사와다에게 던져줬다. 사와다는 옷을 받고 고개를 들어 미무라를 바라보았다.

“너 감기 걸리면 두고 갈 거야.”

“안 걸릴 테니까 걱정 마.”

두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점심을 해결하고 호텔 바깥으로 나서 택시를 탔다. 유명 관광 명소로 알려진 곳부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을 돌아다니면서도, 둘은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마치 이 시간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마저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가기 전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미무라는 가게 안쪽을 돌며 어떤 물건이 있는지

살폈고, 사와다는 고심해서 동생에게 줄 기념품을 골랐다. 사와다는 작은 눈 결정이 달린 목걸이와 팔찌 세트를 집어들고

이 정도면 괜찮겠다며 계산대로 발을 옮기다 그대로 멈췄다.

조명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눈 결정 모양 커프 링크스에 시선을 집중하던 사와다는

미무라의 눈치를 살폈다. 미무라는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있었고,

사와다는 미무라 몰래 커프 링크스를 집어 동생의 선물과 함께 계산했다.

“타쿠야, 살 거 있어?”

“아니, 그냥 보는 거야. 뭐 샀어?”

“동생한테 줄 선물.”

“그래. 다 샀으면 갈까.”

사와다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발을 돌렸다. 미무라는 여전히 한 곳에 시선을 두다가 천천히 발을 돌렸다.

미무라가 끝까지 보고 있었던 것은 기념품 가게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연인을 위한 페어 굿즈였다. 미무라는 주변을 둘러보며

택시 정류장을 찾으면서도, 역시 무난한 것으로 하나 골라 별 것 아닌 척 사와다에게 건네볼 걸 그랬다 하고 작게 후회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땐 이미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미무라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눈발은 낮보다 훨씬 굵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얼른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바람에 몸부터 녹였다. 사와다는 기념품 가게에서 산 물건을 가방 안쪽에 넣어두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미무라는 먼저 씻는다며 욕실로 들어가버렸고, 사와다는 미무라가 블라인드를 걷은 창문으로 바깥을 보았다. 눈발이 이제는 매섭게 휘날리고 있었다. 사와다는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 미무라가 차지하지 않은 다른 욕실로 들어갔다. 선물은 언제 줘야 자연스럽고 적당할까.

사와다는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면서 한참 생각하다 샤워기를 끄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은 사와다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결국 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에 굴복한 사와다는 타일 벽에 기대고 숨을 뱉었다.

 

아, 정말 내가, 타쿠야를 좋아하긴 하나보다.

 

*

 

Dec 31st. PM 12:00

미무라는 답지 않게 늦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2시였고, 사와다는 방에 없었다. 몽롱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누워서

눈만 깜빡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작은 테이블 위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호텔에 뭐 있나 돌아보고 올게. 하고 정갈하게 적힌

사와다의 글씨를 한참 보던 미무라는 기지개를 켜고 욕실로 가 얼굴을 차가운 물로 적셨다. 일부러 이틀 숙박으로 잡아뒀으니

체크아웃은 나가면서 하면 되고, 비행기는 밤늦게 있으니까 택시 타면 될 테고, 호텔에 시설은 많으니까 지루해 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아, 이래서 오늘 나갔어야 했는데. 미무라는 생각을 갈무리하며 욕실 바깥으로 나가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눈발이 휘날리고 있어 바깥은 온통 새하얬다. 미무라는 다시, 계획이 적힌 노트 맨 마지막을 떠올렸다.

……좋아한다는 말, 하고 싶은데. 미무라는 잠옷을 벗고 셔츠로 갈아입었다. 자연스럽게 셔츠 단추를 잠그려는데,

손에 걸리는 단추가 없어 미무라의 손이 허공에서 의미없이 휘적였다. 미무라는 소매를 확인한 뒤에야 자신이 가져온 게

더블 커프스 셔츠라는 걸 눈치챈 미무라는 작게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소매를 고정시킬만한 커프 링크스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셔츠를 벗으려고 맨 윗 단추를 푸는 동시에 호텔 방문이 열리고 사와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미무라는 놀라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바로 몸을 틀어 사와다를 등졌다.

“……미안한데, 나 옷 갈아입으려고. 잠깐 뒤 돌아주면 안 돼?”

사와다는 짧게 탄식하더니 바로 몸을 틀려다 발을 멈췄다.

“갈아입은 거 아냐?”

“옷을 잘못 챙겼어. 커프 링크스가 없어서 이건 못 입어.”

사와다는 바로 선물로 주려고 산 커프 링크스를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건넬 타이밍을 놓칠 그가 아니었기에,

사와다는 바로 가방을 열고 커프 링크스가 든 상자를 꺼냈다.

“타쿠야, 손 이리 줘 봐.”

“응?”

“얼른.”

미무라는 서둘러 다시 셔츠 단추를 잠그고 손목을 내밀었다. 단추가 없어 잠기지 못한 탓에 소매가 정갈하지 못하게 벌어져 있었다.

사와다는 상자를 열어 커프 링크스를 꺼낸 뒤 버튼 홀에 맞춰 단추를 달아 주었다. 미무라는 손을 가져가 사와다가 달아준

커프 링크스를 만지작거렸다. 깔끔한 눈 결정 모양 장식이 조명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거렸다. 미무라는 한참 제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연말 선물이야. 너 주려고 샀어.”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주 들어봤어도 연말 선물은 처음 들어보는데.”

미무라가 다른 쪽은 제가 달 생각으로 커프 링크스가 든 상자를 가져오려 손을 뻗었다.

사와다는 상자를 제가 챙기고는 미무라의 어깨를 잡아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냥, 진부하잖아. 크리스마스는.”

미무라는 사와다를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사와다는 다른 쪽 손목에도 제대로 커프 링크스를 달아준 뒤에야 몸을 뒤로 물렸다. 미무라는 커프 링크스를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몸을 사와다 쪽으로 틀었다.

“신, 눈 많이 와?”

“꽤. 못 나갈 정도는 아닌데, 이것보다 더 올지도 모르니까.”

“호텔에 있어야겠네.”

미무라는 입을 다문 채 우물거렸다. 깊은 정적이 두 사람을 감쌌다. 미무라는 괜히 커프 링크스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조명을 반사해 우아한 은색으로 빛나는 커프 링크스는 아름다웠다. 미무라는 반짝거리는 장식을 한참 보고 있다가 팔을 내렸다.

12월 31일에, 눈이 내린다면.

“이거 그냥 준 거야?”

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물이라니까.”

“그러니까. 그냥 연말 선물이야? 다른 뜻은 없어?”

사와다는 미무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다가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역시 입을 닫고 가만히 있는 건 그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당겨봐야지, 신이 나를 뿌리치고 가기 전까지는.

신이 나에게, 제대로 대답을 주기 전까지는.

“……왜 그런 걸 물어.”

“좋아하니까.”

미무라의 대답은 간결하고 깔끔했다. 사와다는 눈을 살짝 크게 뜬 채 미무라를 돌아보았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손목을 조금 더 당기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좋아해, 신.”

아, 드디어 말했다. 미무라는 미약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사와다는 잡힌 손목을 뿌리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미무라를 바라보다가,

다른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홧홧해지는 것 같았기에, 점차 붉어지는 얼굴을 미무라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당했네.”

예상 외의 답변에 미무라가 의아함을 내비쳤다. 사와다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로 낮게 말했다.

“내가 먼저 할 줄 알았는데, 좋아한다는 말은.”

미무라는 무슨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사와다의 손목을 세게 당겼다.

손목이 확 당겨진 사와다가 휘청거리며 자연스럽게 미무라를 돌아보았다. 미무라는 사와다의 손목을 꾹 붙든 채 또박또박 말했다.

“내 얼굴 보고 말해줘.”

사와다는 다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손을 천천히 내렸다.

흰 눈이 세상을 덮어 모든 소음을 잡아먹은 탓에, 바깥에서 끼어드는 소음은 없었다. 꼭, 세상에 단 둘만 남은 듯했다.

“좋아해.”

미무라의 소매에 달린 눈 결정 모양의 커프 링크스가 일순, 조명을 받아 희게 빛났다.

진짜 눈 결정을 세공해 만든 것처럼, 아주 밝고, 아주 희게.

[사랑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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