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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99.9 형사 전문 변호사 X 야마다 타로 이야기

미야마 히로토 X 미무라 타쿠야

“ 미야마 씨, 제가 당신의 도움이 될 수 있어요. “

 

 소년의 뒤에선 벚꽃이 날리는 듯 했다. 귓볼을 향해 올라가려던 손이 멈추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닫아버린 그는

평소와는 다른 눈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 난 살기 위해서 왔어요. 그리고 날 살려준다면 당신의 도움이 될게요. ”

 

 보이지도 않는 환상으로 가득 찬 눈동자의 배경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부드러운 향기가 보였다.

 

“ 어때요. “

 

 봄이 오려나. 그는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

.

.

 

 탁,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려놓는 소리에 미야마는 앞치마를 벗으며 눈을 돌렸다.

 

“ 기대 이하인걸. “

“ 도련님 입이 너무 고급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

 

 그 거드름만큼은 못하다는 소리죠. 깔끔하고 우아한 손짓으로 식사를 마치고 휴지로 입을 닦은 미무라는 접시를 밀었다.

잘 먹었어요. 그 반응에 맥이 빠진 건지 미야마는 턱을 괴고 식탁에 몸을 기대었다.

 

“ 오늘이야말로 널 굴복시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 유감이에요. “

 

 상냥하기도 해라. 눈을 반달로 접어내린 미야마가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깔끔하게 비운 접시를 집어 들었다. 얼굴이 비쳐 보일 정도로 깨끗이 해치운 저녁 식사. 곱상한 얼굴과 매치가 안 되는 훌륭한 먹성, 그리고 그 와중에 고급진 입맛, 이젠 익숙했다.

 

“ 커피라도 줄까? 아, 드라마 하네. 저거 재밌지. “

“ 됐어요. 금방 잘거라서. “

“ 2부는 광고 끝나고... 참, 이불을 빨았다니까 꺼내놔. “

“ 15점. “

 

 세상에서 제일로 흉물스러운 걸 본 마냥 말장난에 반응하는 저 매서운 눈초리에 찔린 미야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며 접시를 닦았다. 저 놈의 점수는 20점을 넘어가는 일이 없지. 아쉽게 돌아가는 눈동자는 자연스레 그의 초라한 어깨로 향했다.

 

“ 먼저 올라갈게요. 저녁, 잘 먹었습니다. “

 

 그 어깨를 타고 올라 고개를 살짝 숙인 미무라가 고상하게 말하자 미야마는 미소로 화답했다. 물론 그 안에 내일은 두고보자는

의미가 내포되어있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좋은 밤을 보내란 의미에서의 서비스 정신을 받아들인 도련님은

다시 미소를 보내주며 잠을 청하러 갔다.

 

“ 잘 자장가- “

“ 27점. “

“ 어라, 아카시 안 갔어? “

“ 네가 안 보냈잖아! “

 

 나도 집에 가서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우는 소리를 한 아카시를 바라보다 설거지를 마친 미야마는

그제야 식당 밖으로 나가 커튼을 걷고 아카시를 내보냈다.

 

“ 잘 가게, 빵 가게. “

“ 25점. “

“ 박하네, 박하사탕? “

“ 정말 늘 말하는 거지만 저 애는 뭐냐고!“

“ 도련님이지, 딱 보면 몰라? “

“ 제발! “

 

 무슨 위험한 일에 휘말렸길래 저 도련님이 나갈 때나 나올 때나 VIP 경호하듯이 딱 붙어있는 건데!

덕분에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잖아! 아카시가 궁시렁거리며 가방을 챙겨들고 문 밖으로 나오자

미야마는 상큼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도움이 되는 애. “

 

 쾅. 망설임 없이 닫힌 문을 보며 아카시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 봐도 이해가 안 가는 놈이야.

그렇다고 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아카시는 가방을 왼쪽 어깨에 매고 거리를 걸었다.

 

.

.

.

 

” 춥다... “

 

 인적도 없는 골목을 걸으며 밤바람에 옷을 여민 아카시는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언제였지,

6개월 전이었나. 언제부턴가 매우 뜬금없이 미야마의 곁에 생긴 그 기묘한 소년의 존재를,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웬일로 빨리 퇴근하네? “

” 뭘 하나 주워 왔거든. “

 

 그래, 정말 갑자기였지. 뭘 주워 왔다길래 개나 고양인가 했는데 사람을. 그것도 몸값이 수백억은 되어 보이는 도련님을 주워왔다며 떡하니 옆에 붙은 소년을 보며 씩 웃는 미야마는 정말 한 마디로 미친놈이었다. 지금 와서 미친놈 절씨구 하는 것도 지겹겠지만

확실했다. 미야마는 명백한 또라이였다. 그런 또라이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아카시는 다시 제 처지를 떠올리곤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병신이지.

 

” 도련님 말야. “

” 미무라 군? “

” ...아니다, 지금 3월이지? “

 

 미친 게 분명했다. 본인이든 그 변호사든. 아카시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느 봄 날, 초라한 행색으로 도움이 되겠다며 찾아왔다던 그 소년은 미야마의 곁에 딱 달라붙어선 단 한시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평소엔 가게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지내다가 미야마가 돌아오면 바로 나와 그의 옆에서 돌아다니며 몇 마디를 나누고선 밥을 먹고

들어가는 게 그 소년의 일상이자 루틴이었다. 그리고 뭐가 그리도 위험한지 소년이 나오는 순간은 가게도 닫고, 창문도 봉쇄한 후

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 소년과 대화를 나누면서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에 아카시는 늘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 소년은 나타난 것이고 무슨 사정이 있어서 여기에 머물고 왜 떠나지 않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의문은 단연코 미야마, 그 자체였다.

 

” 도련님,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

” 있으면 해주시게요? “

” 글쎄. “

” 나폴리탄이요. “

” 그럼 내일은 우동으로 할까. “

” 재밌어요? “

” 응 .“

 

 정말 환장하겠네. 고 염병할 꼬라지들을 볼 바에 차라리 이키마스를 외치고픈 불쌍한 아카시는 내일 또 그 투샷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밤에선 그의 탄식 후 힘 빠진 발소리만이 들렸다. 뭐 어쩌겠어.

결국 해탈하고야 만 아카시는 고개를 저으며 가방을 고쳐 맸다.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고 의심스러운 상황뿐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미야마와 소년의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결국 소년이든 뭐든 넓은 아량으로 지켜보기로 결심한 장한 아카시는 하늘에 고요히 뜬 달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 좋아. 미무라 타쿠야군, 힘내보자고! “

 

 그리고 약 4초 후에 점점 커지는 발소리들과 함께 미야마가 일전에 한 몇 마디가 떠올랐다.

그 도련님 말야, 낯을 엄청 가리니까 밖에선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 ...젠장… “

 

 망했네. 손발이 단단히 압박되는 느낌과 입으로 거칠게 들어오는 젖은 손수건에 아카시는 눈을 감았다.

 

.

.

.

 

 밤, 적당히 달이 지난 밤. 미무라는 이불을 반쯤 덮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늘따라 잡생각이 많으면 그리 편하게 자기도 어려웠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였지만 난 서로가 꽤나 양호한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믿을 수 없는 신뢰관계 속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진실을 찾는 두 눈이, 예상의 이상이라 그런 걸까. 그래서 그런 걸까. 이미 옳아버린 한심한 말장난에

미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마치 혼자 생각에 빠질 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야마가 문을 열곤 나타났다.

 

“ 도련님, 오늘은 일찍 자. “

“ 무슨 일 있나요? “

 

 미무라의 물음에 쓸데없는 팬서비스로 답한 미야마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손을 뻗어 미무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 120에서 135려나. “

“ 헛소리 할거면 잘게요, 나가주세요. “

 

 역시 쿨해, 바라던 바라며 미무라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나간 미야마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조용히, 그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그런 미래를 보장해줄 거라며 약속이라도 한 마냥 굳게 닫힌 문을 보던 미무라는 피식 웃었다.

 

“ 거짓말은 꽤 하는 줄 알았는데. “

 

 쑥맥이라. 밖에서 들리는 달리는 소리와 차 소리에 귀를 기울인 미무라는 한참을 웃더니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문은 아주 쉽게도 열렸다.

 

“ 아카시 씨가 위험하니 가야겠지. “

 

 우린 서로에게 꽤나 양호한 사람이었어. 당신이나 나나. 그러니 더 많은 감정은 있어야 무의미하지. 그거면 된거야.

난 그 이후의 진실을 찾은 당신을 기대할게. 문을 열고 나간 미무라는 주머니에서 진동으로 울리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 끝났어요? “

 

아카시의 위치를 알려준 것은 도련님이었다.

 

.

.

.

 

“ 미야마씨, 정신이 들어요? “

 

 잠깐 기절했던 것 같은데, 물론 심각한 데는 안 건드렸으니까 안심해요. 여전히 벚꽃이 날리는 듯 했다.

꿈같은 목소리에 꿈에서 깨어난 미야마는 미소를 지으며 도련님을 바라봤다. 아름다울수록 독이 있다더니.

 

“ 도련님. “

” 설마 몰랐다고는 하지 않겠죠. “

” 몰랐다면? “

” 지금 여기에 없었겠죠. “

” 호오. “

” 아마 가게에서 우동이나 끓이고 있지 않았을까. “

 

 틀렸어, 우동이 아니라 나폴리탄이지. 우동은 몸에서 사리가 날 정도로 해먹었으니. 미야마의 센스 없는 언어유희에도 점수를 매기지 않은 미무라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눈에는 봄으로 보였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가엾은 나무가 덜덜 떨면서도 기개를 피는 봄, 그만의 계절.

 

“ 걱정 마요, 여기서 죽일 생각은 아니니까. 아카시 씨… 미끼도 팔팔하게 살아있고.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내일 당신의 재판 불참석과 미무라 가에 대해 조사한 자료들을 파쇄하는 거에요. “

 

정말 별일도 아닌 것으로 착각해버릴 듯한 목소리였기에 미야마는 눈을 또렷하게 뜨고 정신을 차렸다.

미무라, 미무라. 도련님. 꿈같은 네가 이 자리에서 날 배신할리 없지. 미야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미 먼 풍경이 선명했다.

 

“ 아깝지도 않아? 그 조사는 도련님 지분도 꽤 있을텐데. “

“ 어차피 사라질 거, 진실을 말한 건 상관없어요. ”

“ 그래? 유감이야. ”

 

 유감스럽지도 않은 목소리로 해맑게 받아들이는 태평함에 질린 듯 미무라가 피식 웃었다. 정확히 하자면 웃어버렸다.

결국, 결국 내가 졌구나. 별 말이 없어도, 평소와 같은 풍경이어도 늘 알 수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감정은 무의미했지만, 진실 앞에선 거짓조차 하나의 말이었다. 그것이 결국 예상을 뛰어넘은 이상이 된다면.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 미야마 씨.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요? ”

 

 말없이 기분 나쁘게도 밝은 웃음으로 눈을 반짝이는 얼굴에 미무라는 미야마에게 다가가 그를 단단히 묶은 밧줄을 끊고

열쇠로 수갑을 풀며 말했다.

 

“ 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 때, 그 겨울 나는 정말 살기 위해서 당신에게 간거고.

지금은 내가 당신을 도울 차례인거죠. ”

 

 살기 위해 당신을 이용했고, 살리기 위해 나를 이용한다. 그리 합리적이진 않지만 나름 낭만적인 오답이었다.

미야마의 몸이 자유로워지자 미무라는 방문을 보란 듯이 활짝 열어두고선 미야마에게 열쇠 꾸러미를 던졌다.

 

“ 가져가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아카시 씨는 밖에 있을 거에요. ”

 

 그 날, 당신에게 멍청한 제안을 한 겨울에서부터 짧은 봄이 몇 차례 지나갔다. 살기 위해 겨울에 머무르려 했는데,

당신을 살리기 위해 봄에 도착했다. 하지만 결국, 결국은 그게 내 정답이었다.

당신 없이는 그 어떤 계절도 버티지 못하는 꽃이 되었으니까.

 

“ 안 가요? ”

“ 도련... ”

“ 미야마 씨. ”

 

 걷어차기 전에 꺼지세요. 생전 처음 보는 듯한 미무라의 애틋한 미소에 미야마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아, 너는, 너는 정말. 정말로

 

“ ...나폴리탄, 먹으러 올 거지? ”

“ 미야마 씨, 안녕. ”

 

 선언한대로 미야마를 걷어차 내쫓아버린 미무라는 잠시 자신을 보다 망설임없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거두었다. 잠시 후, 경비들이 오고, 쓸모가 없어진 도련님은 쓰레기통에 쳐박힐 것이다. 잘라내버린 꽃 줄기처럼. 아무 물기없이 이용하려 한 사랑이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었다. 그 아이러니에 헛웃음이 난 도련님은 벽에 등을 기댄채 주저앉았다.

저 어디선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 미야마 씨. ”

 

 단 한 가지. 단 한 번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절대 당신 앞에선 말하지 않으려 했어. 바라던 대로는 되었지만 당신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괜한 생각이 드는 것도 지나가는 계절의 변덕이나 어리광이라 생각할게.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린 서로에게 꽤나 양호한 사람이었고, 당신은 늘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지. 양호로 감쌀 수 없는 진실을 벗겨낸 사람. 어쩔 수 없지, 당신을 만나고 겨울밖에 없던 시간이 흘러버렸으니까. 꽤나 괜찮은 만남이었어. 그리고, 꽤나 맛있었어. 도련님은 하늘을 바라봤다.

 

“ 처음엔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지금은 당신이 날 사랑할까 두려워... “

 

 우습지, 0점이야. 봄이 지나고, 꽃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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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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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뒤에선 벚꽃이 날리는 듯 했다. 그 때 알아챈 것은 봄이 오는 순간이었지, 봄이 떠나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쉼없이 지나가는 계절의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환상으로 가득 찬 눈동자의 배경 사이로, 너로부터. 따스한 햇살이, 부드러운 향기가 보였다.

그 날, 나는 분명히 봄을 보았다.

 

“ 미야마 씨, 안녕. ”

 

 너무도 이른 봄, 겨울의 티를 벗어내지 못한 봄. 도저히 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싸늘한 계절.

어쩌면 봄이라 착각한 겨울, 사라진 계절.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나의 봄이었다.

[다바나아] @4KXqMkuSFADVU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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