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of the Dead
-죽은 자들의 날-
블랙페앙 X 신의 카르테
토카이 세이시로 X 쿠리하라 이치토
<할로윈 시기에는 축제를 틈 타 귀신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 채 인간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니 특히나 악령에게 홀리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람. 병원에 입원한 환자분들을 필히 평소보다 잘 관찰해주십시오, 신입 의사와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로 주의 부탁.>
혼조 병원도 여느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10월의 마지막 즈음에는 꽤나 화려한 장식을 병원 안에 걸어두거나, 놓아두고는 한다.
오래된 건물인지라 딱히 그런 꾸밈없이도 충분히 1년 365일 할로윈 분위기는 내고 있는 셈이지만. 쿠리하라는 방금 접수 데스크에
걸린 호박모양 랜턴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제 손에 들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으로 옮겼다. 오늘 아침 사무장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할로윈 장난 같은 주의를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굳이 할로윈이 아니라도 100년에 가까운 역사가 있는 낡은 병원 안에서는
가끔 귀신을 봤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다행인지 5년을 넘게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쿠리하라는 아직 그런 일은 겪어 본 적이 없다. 눈치 채지 못한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이왕 만나는 것이라면 소세키나 아쿠가타와를 만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년 하고는 한다. 새하얀 의사 가운의 커다란 주머니 안에는 맥주캔 대신 알록달록 새콤달콤한 사탕이 터져 나올 듯 잔뜩 들어있다.
trick or treat(트릭 오어 트릿) 이라고 해도 막상 Trick을 고를 아이들은 없겠지만.
애초에 저에게 사탕을 달라며 덤벼드는 아이들도 없고. 쿠리하라는 주머니 속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들어 까먹었다.
"또 얼마나 못 잔 거예요?"
"으음..."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오는 애가 없죠. 따로 분장도 필요 없네, 좀비가 따로 없어요 지금."
"...그렇게 심한가?"
먼저 했던 말은 아무래도 취소해야할 것 같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머리띠며 후드며 뭔가를 뒤집어 쓴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다니면서 의사며 간호사들에게 과자를 갈취하고 있었다. 사이에 책갈피를 꽂아두고 풀베개를 닫아 주머니 속에 넣으려니 본래 그 안쪽에
들어있던 사탕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우와아- 우렁찬 소리를 내며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달려온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뛰면 안돼요! 먼 외국, 어린 아이들의 생일파티에 쓰인다는 피냐타가 이런 느낌이려나.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막대기로 두드려 맞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자이는 멍하니 잡생각에 빠져 서 있는 쿠리하라의 등을 강하게 팍팍 쳤다.
지금 한산할 때 눈 좀 붙이고 오시죠? 반갑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쿠리하라는 꾸벅 도자이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수면에 쓰일 1분 1초가 아까웠다.
"아, 이치토 쉬러 온 거냐? 음...그래 좀 자야겠네."
"...그렇게 심한가?"
"의사 가운 아니었으면 심각한 환자라고 착각했을 거라고."
"볼에 그건 뭐야."
"어, 깜빡하고 안 지웠네, 304호 꼬맹이가 그려줬어. 뭐라더라 토끼?"
토끼. 기다란 귀에 짧은 꼬리를 가진. 저 그림과는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독특한 생물이 아닐 수 없다. 빨간 눈 하며,
제 배설물을 스스로 먹는다거나. 쿠리하라가 털썩 소파에 주저앉아 뭔가에 홀린 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하니 스나야마는 고개를 내저으며 얼른 의국을 빠져나갔다. 끔뻑끔뻑 느리게 감기는 눈틈으로 새하얀 무엇인가 훅하고 눈앞을 지나쳤다. 지로가 돌아온 걸까? 아니면 토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저 녀석을 쫒아 가면 우산 같은 치마를 입은 앨리스라는 소녀마냥 토끼굴 속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잠에 취해 실없는 웃음을 흘리던 쿠리하라는 결국 하얀 물체의 정체는 밝혀내지 못하고 눈꺼풀 속의 어둠에 빠져들었다.
토끼는 쿠리하라에게 다가가서는 중얼거렸다. 방해야.
소파 위에서 잠이든지 얼마나 지난 것일까. 쿠리하라는 쉽게 떠지는 눈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가벼워진 몸, 맑아진 정신, 아직까지
한 번도 들리지 않은 콜. 암막커튼이 쳐져있는 깜깜한 의국 안. 쿠리하라는 차마 커튼을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숨을 푹 내쉬고 한 발짝 일반 병실을 향해 나아갔다. 그 사이에 소아 병동 쪽은 이미 완전히 할로윈의 준비를 끝낸 듯 했다. 그 때문인지 뭔가 묘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라니 이미 토끼 굴의 안쪽인 것이 분명했다. 쿠리하라의 허리춤에 키가 닿을까 말까한 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뭔가를 원하는 듯 쭈뼛거렸다. 우물쭈물 저를 향해 작은 손을 뻗어오는 것에 쿠리하라는 깨달은 듯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든 것을 꺼내주었다. 와아- 기뻐하는 소리와 화려한 사탕껍질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제 얼굴을 보고도
아이가 무리 없이 사탕을 받아가는 것을 보니 역시나 아까 소파에서 푹 잘도 자버린 것 같았다.
"쿠리하라 선생, 바쁜데 여기서 놀고 있어?"
"아, 죄송합니다...음.."
언뜻 나른해 보이는 얼굴이 쿠리하라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쿠리하라의 키가 더 크니 정확하게는 올려다 본 것이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병원 안에서 빤한 하얀 가운을 입었으니 동료 의사임에 틀림이 없을 텐데. 명찰이 없었다. 뭐, 의외로 흔한 일이니 상관없었지만 쿠리하라 본인을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르다니 이것이 무척이나 실례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병원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병원 안의 사람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니, 쿠리하라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상대는
재밌어하며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박혀있는 잘생긴 얼굴이다. 멍청한 얼굴하기는, 좀 더 자는 게 어때?
낮지만 좋은 목소리가 머리 주위를 빙글빙글, 이게 바로 귀신에게 홀린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하얀 게 혈색도 없는 것 같고. 눈 밑도 어둡고. 말투가 조금 신경질적인데다가,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습니까?"
"뭐?"
"그..잠을 조금 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가 내 자리에서 자는 바람에 말이야."
"의국의 소파는 누군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다 함께 사용하는.."
"병원 거잖아."
"아."
허를 찌르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 의료진들을 위해 구입을 하고 의국에 배치를 한 것이니까. 딱히 병원의 것이라고는.
그렇다고 해서 의료진 중 누군가 소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할 때 들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소파를 들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소파의 구매자겠지. 그럼, 자신이 병원장 아들이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쿠리하라는 중얼중얼 또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때, 소란한 벨이 울렸다. 호출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주위에는 쿠리하라 저 혼자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역시 귀신에 단단히 홀린 것이 분명했다.
<"바이탈은?"
"혈압 100대, 맥박 125, 산소포화도 89퍼센트, 레벨 다소 혼탁."
"이상한데."
"심전도, 니트로펜, 산소 준비.">
이 환자, 심근경색이 의심된다. 쿠리하라는 토끼 굴의 밖으로 급하게 튀어 올라갔다. 울리는 콜도 듣지 못하고 기세 좋게 자버린 것
치고는 잔소리도 없이 조용한 응급실이 불안하긴 했지만 분명하게 그의 일상이었다. 혹시 정말로 자는 동안 한 번도 응급환자가
들어오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그런 일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방금 전에
쿠리하라가 만났던 잘생긴 미남 의사 귀신은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할로윈의 기묘한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그래 지금 응급실 안에 들어온, 꼭 저렇게 생긴 남자였다.
"...귀신."
"어머, 선생님 토카이 선생님 알아요?"
"토카이? 아니 그러니까 저건 아까 만난 귀신인데."
"맞아요.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귀신이라고 불렸대요."
"...사람이야?"
"아직, 잠 덜 깼네."
그새 담당한 환자의 응급처치가 끝났는지 피 묻은 장갑을 착, 소리가 나도록 벗어서 던져두고 토카이는 쿠리하라에게 다가갔다.
토무라는 헛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멍하게 토카이를 쳐다보고 있는 쿠리하라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쿠리하라 선생님 덕분에 병실이 미어터질 정도로 환자가 밀려들어왔는데 말이죠,
오늘 토카이 선생님이 헬퍼로 오셔서 정말 다행이지 뭐에요.
진단이랑 처치가 얼마나 빠른지 쿠리하라 선생님도 봤으면 정말 놀랐을 거예요.
오늘 콜 딱 한 번 울린 게 다 토카이 선생님 덕분이니까.
베테랑 간호사인 토무라가 이렇게까지 열을 올리며 칭찬하는 것은 정말로 목격한 것이 대단했거나, 토무라 마저도 저 토카이라는
귀신에 홀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쿠리하라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천천히 두 손을 올려 제게 다가온 토카이의 양 볼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감쌌다. 기 보다는 쳤다. 짝, 소리가 응급실을 울림과 동시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쿠리하라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쿠리하라는 생각했다. 만질 수 있으니 귀신이 아니구나. 그리고 그제서야 자기소개를 했다.
"내과의 쿠리하라 이치토입니다."
"..잠이 덜 깬 게 아니라 원래 이상한 놈이었나."
토카이의 미간이 좁아졌다. 동시에 간호사들이 옆에서 튀어나와 쿠리하라의 양 팔을 붙잡아 끌고 빠른 속도로 끌고 응급실 밖으로
도망쳤다. 쿠리하라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는 동안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떨어진 사탕이 그가 떠난 길을 만들었다.
토카이는 사탕으로 만든 길 중간에 떨어진, 내용물이 없는 반짝이는 사탕 포장지를 보고 아까 전 소아병동에서 쿠리하라를 마주쳤을 때를 생각했다. 쿠리하라의 허리쯤에 키가 닿을까 말까한 정도의 빈 공간, 다시 말해 허공에 쿠리하라는 몸을 조금 굽히고 웃으며
사탕을 내밀고 있었다. 그가 잠이 덜 깼던 것이 아니라면, 쿠리하라는 과연 누구에게 사탕을 내밀었던 것일까.
뭐, 이제와서 알아봤자 별로 의미는 없지만.
토카이는 무심한 눈으로 쿠리하라가 떠난 응급실 문을 바라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응급실에 새로 실려 온 환자를 향해 걸어갔다.
trick or 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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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 쓰인 부분, 신의 카르테 원작 1권 16페이지 쿠리하라의 진단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