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10월 31일이야
가족게임 X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남자 2
누마타 신이치 X 토도 아유미
방에 들어서자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토도 아유미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자동인형처럼
공허한 눈을 이따금 깜빡거리기만 했다. 그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다소 상냥하지 못하게 그에게 수건을
던져주고 책상 의자에 풀썩 걸터앉았다. 그는 느릿하게 수건을 집어들고 머리칼을 수건으로 두드리며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친가 일로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데다 동생은 밖에서 폭탄이 터져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사람이라 망정이지.
모았던 다리를 쭉 뻗고 팔짱을 끼자 다시 그가 고개를 내쪽으로 돌렸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웬 할로윈 유령이 집에 찾아왔나 했는데.”
“집에 너 혼자야?”
“아니, 옆방에 동생 있어. 신경쓰지 마. 어차피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그는 흐응, 하는 콧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얼굴을 약간 찡그리자 그는 되레 웃었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낸 그가 고개를 약간 젖히더니 숨을 가늘고 길게 내뱉었다. 나는 눈만 옮겨 창밖을 흘끔 보았다.
이미 짙은 군청색으로 뒤덮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신이치 군.”
“왜.”
“오늘이 10월 31일 맞지? 할로윈데이.”
“맞는데.”
그는 입을 다물고 다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더니 몸을 웅크렸다.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 그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몸을 잘게 떨었다. 붉게 충혈된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게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길고양이 같았다. 버릇처럼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토도 군 하고 그를 불러보았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텀을 두고 다시 한 번 토도 군 하고 불러도
여전히 그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그를 응망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유미.”
낮은 부름에 네가 파뜩 고개를 들고 이쪽을 보았다. 일순 네 진짜 얼굴을 보았다는 생각에 속이 훅 차가워졌다. 그는 이따금 이렇게, 쓸데없이 신경쓰이게 구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얼굴을 찌푸리고 짜증이 섞인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있을 생각인데?”
“신이치 군.”
너는 답지 않게 나긋하게 나를 부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시선을 들어 너를 쫓자, 너는 내 앞에 서서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닦이지 않고 남아 있는 물기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 셔츠를 적셨다.
“나 재워줘.”
“뭐?”
야밤에 다짜고짜 찾아와서 온 집안이 울리도록 벨을 눌러댄 것도 모자라, 대뜸 재워달라고 하는 그의 사고방식을 나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자 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네 협박 따위는 무섭지 않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그를 집에서 쫓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딱히 그를 동정하는 건 아니었고, 다만 그 위태로워 보이는
표정의 근원이 궁금했다. 나는 일부러 그의 차갑고 축축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난 너한테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싸구려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을 무서워하지도 않아. 그런데도 나야?
이건 취향이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공허한 눈이 갈 길을 잃고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한마디 쯤 받아칠 사람인데, 너는. 가는 눈을 뜨고 네 낯을 뜯어보며 머리를 굴렸다. 이내 떠오른 결론에 조소가 터져 입을 가리고 웃자
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했다. 나는 또 일부러 네 젖은 머리칼을 살살 만졌다.
“안 찾아간 게 아니라 못 찾아간 거구나. 네 학교 친구들은 네가 아주 잘난 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나야?”
“그러면 안 돼?”
“아니, 그냥.”
애매하게 끝난 문장이 새벽 안개처럼 흩어졌다. 무감한 낯을 유지하던 네가 일순 미간을 찌푸렸다. 내 손을 따라 네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져, 이번엔 셔츠가 아니라 내 뺨을 적셨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뺨을 문질러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아입을 옷이면 돼?”
서랍장 아래칸을 열어 안쪽에서 면으로 된 반바지와 흰 셔츠를 꺼냈다. 꺼낸 옷에서 나무 냄새가 끼쳤다. 그는 내가 건넨 옷을
만지작거리며 욕실은? 하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세워 아래를 가리켰다. 그는 다시 정교한 자동인형 같은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걸터 앉아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는 나를, 정확히는 내 손을 오래 바라보더니 쌀쌀맞게 등을 돌렸다.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문 밖으로 몸을 빼고 바깥을 살폈다. 복도 바닥에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점점이 이어진 물자국은 계단 앞에서 끊겨 있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방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굳게 닫았다. 다시 네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책상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손에 걸린 초콜릿을 손끝으로 건드리자 초콜릿이 힘없이 툭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초콜릿을 손 안에서 굴리며 시선을 방문 쪽으로 돌렸다. 할로윈데이엔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던데.
어디서 바람이 부나 싶어 방문 쪽을 바라보니, 토도 아유미가 소리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오려다 말고 문에 기대어 섰다. 셔츠는 큰데 바지는 짧아서 네가 어깨를 떨어뜨리면 셔츠 자락이 바지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셔츠 자락은 무릎 위에서 끊겼고, 맨살이 훤히 드러난 무릎 아래서부터 시작한 붉고 푸른 징검다리가 종아리를 지나 복사뼈 근처까지 비뚜름하게 이어져 있었다. 토도 아유미는 긴바지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약간 거리를 두었다. 나는 손에서 굴리던 초콜릿을 그 틈에 내려놓았고, 그는 초콜릿을 가져가 손 안에서 굴리더니 포장을 벗겨 베어물었다. 그는 내 쪽을 흘끔 보더니 다리를 쭉 뻗었다. 가까이서 보니 거무죽죽한 보라색을 띄는 부분도 있었다. 근원이 분명한 불쾌감에 시선을 돌리자 네가 내 소매를 붙잡아 당겼다.
“신이치 군.”
“왜.”
“남한테 보여주는 건 처음이야.”
그는 초콜릿을 한 입 더 베어물더니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네가 처음이야.”
그는 남은 초콜릿을 입 안에 밀어넣으며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조금의 거리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침대를 짚고 있던 손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의미를 모르겠네.”
“모르는 척 하는 거겠지.”
그가 침대 위로 다리를 올려 몸을 웅크리자 옷 아래에 숨어 있던 보라색 자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약간 긴 소맷단을 일부러 잡아 늘리더니 단정하게 접었다. 그는 내게 다른 옷을 요구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난 할로윈 유령이야. 제대로 죽질 못해서 매일 구천을 떠돌아. 그러니 1년 내내 할로윈이지.
1년 내내 과자를 내놓으라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과자를 받지 못하면 장난을 쳐.”
이어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질렸다는 얼굴을 하자 그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얼핏 드러난 그의 얄쌍한 손목에 꼭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그의 손목에 시선을 두자 그는 손으로 제 손목을 감싸쥐었다.
“근데 너랑 같이 있으면 제대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말이 끝나자마자 내 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나는 바로 몸을 틀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답지 않게 동요를 숨기지 못한 그가
손목을 거세게 당겼고, 나는 손에 힘을 주어 놓치지 않도록 버텼다. 예고도 없이 힘이 한쪽으로 쏠리자 그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어깨를 손으로 세게 밀쳤다. 침대 메트리스가 크게 출렁였다.
수평하던 시선이 뒤집혔다. 그의 올려다보는 시선과 나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소매가 밀려올라가 그의 손목이
훤히 드러났다. 희고 야윈 손목 위에 화상 흉터가 짙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검지로 손목에 남은 흉터를 진득하게 문질렀다.
그는 턱을 약간 들고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다른 손으로 눈을 덮었다가 떼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팔을 쭉 뻗더니 내 목을 끌어안아 내 상체를 당겼다. 상체가 네 쪽으로 느릿하게 기울었다. 불쌍한 토도 아유미. 나는 동정하지 않고도 상대를 불쌍하다느니 가엾다느니 하며 남을 내려다보는 데에 도가 텄고, 너는 이미 그걸 알고 있을 테다.
그래, 우리 다 알면서 이러는 거잖아.
“신이치 군. 지옥에 갈 때, 같이 가자.”
나는 대답 없이 눈만 가늘게 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입을 다물었고,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가여운 토도 아유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음울한 생명. 네 머리칼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남은 물기는 없었다.
“그래줄게.”
당연한 대답이었다. 나여야지, 네 오랜 할로윈을 끝내고 너를 유황불에 처박는 건. 나여야지. 내가 해야지. 너한테는 나밖에 없으니까. 네가 손에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느새 12시가 지났네. 오늘은 10월 31일이야. 즐거운 할로윈 보내, 아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