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만 모르는 이야기
아이바 마사키 X 사쿠라이 쇼
*
밝은 조명 아래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 안에서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어울려 즐거운 분위기를 풍겨온다. 그러다 몇 분이 흘렀을까. 잠시 후 한 곳에서 비명이 들리고 그 소리는 점차 사람들을 통해 전파된다. 그렇다. 사쿠라이 쇼가 사고를 당한 그 순간이었다.
*
정신을 차리고 누워있던 몸을 들어보면 분주히 움직이던 사람들이 멈춰서 사쿠라이를 바라보았다. 경악과 두려움과 역겨움을 가지고. 왜 자신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사쿠라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뭐라도 잘못한 건지 싶어 물어보기 위해 몸을 일어나면, 무언가 아래에 걸렸다가 뚝-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고개를 밑으로 내리면 자신의 몸뚱어리가 차가운 도로에 뉘어져 있다. 피에 흥건히 젖은 채로. 가슴이 요동치고 턱턱 막힌 기분이 든다.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은 물론이고 눈물이 울컥 차오를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구토감에 헛구역질을 하지만 역시나 나오지 않는다.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거리며 뒤로 주춤하다 넘어질 뻔했지만 넘어지지 않는다.
"정신 차려요."
누군가에게 기대어져 있는 몸에 고개를 위로 올리면 검은 옷의 애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화사하게 웃으며. 애인의 얼굴이지만 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있잖아,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가지고 있대."
"에이, 거짓말. 누가 살아남아서 그걸 알려줘?"
"아냐, 진짜라니까! 그렇게 전해져 내려온대!"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그걸-"
누가 믿겠어. 사쿠라이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예전에, 아니 생전에 자신의 애인과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뒤 쫄아있는 자신에게 슬쩍 알려줬던 이야기. 하지만 무섭지 않아서 금방 쪼그라들었던 어깨는 점차 펴지고 웃으며 들썩거렸었다. 진짜네.
환하게 웃던 애인의 표정이 점점 풀어진다. 아니, 딱딱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도 따뜻한 눈빛은 그대로이다.
"안 속네."
"당연하죠. 그 아이는 검은색 같이 그렇게 칙칙한 옷을 거의 안 입는다고요."
"엣, 그 이유?"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애인 같아서 귀엽다. 하지만 이 자는 나를 데리러 가려는 저승사자겠지. 그렇다면 이대로 끌려갈 수 없었다.
황급히 몸을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끌려갈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다간
무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으니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을 딜 해볼까, 하고 사쿠라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바깥으로 들릴 것만 같이.
"하, 한 달 만!"
"...그럴까?"
"엣."
"응?"
"에?"
역으로 당황하는 사쿠라이에 애인의 얼굴을 띈 저승사자의 눈이 커진다. 뭔가 문제라도 있냐고 거참 상냥하게 물어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1년이라고 할 걸 후회가 바로 물밀 듯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이라도 엿본 건지 더 긴 기간을 말했으면 가차 없이 잘랐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쳇. 입술을 내밀며 삐진 티를 내면 이것도 잘해준 거라고 화내는 애인이 눈앞에 보인다. 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밖에 없단 말이지. 그제야 애인이 걱정이 되었다. 급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시체 근처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애인이 보인다. 아마 어제까지 따끈했던 자신이 차가워져서 놀랐겠지. 만질 수는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옆에 앉아 애인의 등의 위치를
가늠하고 토닥인다. 울지마. 울지마. 괜찮아.
*
사쿠라이는 하루도 빠짐 없이 자신의 애인을 따라다녔다. 애인이 길 가다 주저 앉아 울면 같이 주저 앉아 울고 싶어 했고, 한숨을 쉬면, 따라 한숨을 쉬었으며 우울함에 젖어있으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녀의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푸석해지는 것 같아 미안했으며 빛이 나던 밝은 눈동자에 빛이 사라지고 물기로 가득 차면 죽었음에도 죽고 싶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잘 있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유예기간은 길게 주던 사자가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 범위를 넘었다며 변명했다. 그럼 네가 해주면 되잖아.
그것도 안 된다고 하였다. 뻔뻔하게도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런 것 하나 해줄 수 없으면서 무슨 저승사자야.
그렇게 대놓고 중얼거리며 저승사자를 바라보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사쿠라이를 바라보았다.
"...애인의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 마음 아파."
"...미안."
그러는 동안, 한 달 뒤이자 사쿠라이의 생일 전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초조해져 가는 사쿠라이를 보며 왜인지 같이 초조해져 가는
저승사자였다. 그리고 결국 사쿠라이는 자신의 생일 전날인 1월 24일에도, 생일에도 가지 못하였다.
*
망자가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년. 그 안에 데려가지 않으면 악귀가 되거나 소실되어버리고 만다. 이 사실을 알려줬건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어도 사쿠라이의 눈은 여전히 애인에게 있었다. 그러는 동안 주시당하고 있는 그의 애인은 차츰차츰 회복해나아갔다. 그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라도 한 건지, 아니면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위로할 때, 사쿠라이의 온기를 느낀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전자든 후자든 사쿠라이에게 있어서 애인의 회복은 그저 기쁨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저승사자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의 관심이 아닌, 그저 옆에 있어 주는 이로써,
저승사자보단 친구의 의미였다. 아무래도 오래 함께 있으면 누구든 정이 붙지. 사쿠라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언 7개월이 흘렀다. 아직도 가지 않고 있는 사쿠라이가 대단하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물론 그런 말은 아이바 마사키,
즉 사쿠라이 담당 저승사자를 모르면 그렇게 여길 수 있었다. 냉철함으로 승부하는 저승사자를 어떻게 홀렸길래 그렇게 버티고 있담. 이게 저승 쪽에 소문난 사쿠라이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바를 알고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정 들었구먼."
"...네."
아이바의 상사인 오노는 금방 알았다. 당연히 알 수 있었다. 오노는 아이바와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5년이 다 되었다. 저승에서도 이승에서도 그리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현장직인 저승사자치고는 잘 버티는 편이었다. 맡은 령이 악귀가 된 적도 없었고 1년을 넘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바 자신이 나쁜 맘을 먹은 적이 없었다. 현장직은 아무래도 그게 문제지. 사람에게 동화되어 나쁜 맘을 먹고 일을 벌이는 순간, 저승사자 직위에서 해제되고 악귀가 되는 것이다. 그게 5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저승사자직은
5년을 넘기거나, 5년을 못 넘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착한 것은? 망자만 잘 인도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저승입장에서 딱히 좋은 저승사자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저승사자들이 대부분이고, 원래부터 정이 많거나 잘 도와주는, 어쩌면 생전 인품이 너무 좋아서 조금은 문제가 있는 망자가 저승사자로 뽑혀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니지. 없었다, 아예. 그런데 아이바는 그 당연했던 사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신입일 때부터 정이 너무 많았다. 그때였다. 정이 이렇게나 많아도 저승사자로서 뽑힐 수 있구나. 오노가 위쪽의 시스템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 참 알 수 없단 말이지, 여긴. 그래도 이렇게까지 유예를 준 것은 5년 동안
처음이었다. 설마 마음이 있나 싶어 떠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아이바는 강하게 부정했다. 친구 같아서 그래요, 친구 같아서.
그것도 자랑은 아니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 1년이 되려면 5개월은 남았으니까.
하루빨리 그 '쇼짱'이라는 친구가 마음을 고쳤으면 좋겠을 뿐이라고 오노는 생각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치를 주는 자신의 상사를 보니 확실히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사쿠라이가 갈 생각을 안 하겠지 싶어 한숨을 쉬고 있던 도중 어슬렁어슬렁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쿠라이가 보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오늘은 너 따라 다녀볼까 하고."
"...뭐?"
"에이, 친구끼리 뭐 어때! 친구가 일하는 것 구경하나 못하나?"
친구 아냐, 쇼짱... 아이바의 고민하는 마음을 정말 사쿠라이가 모를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있는 듯 헤실헤실 웃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항상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면서. 어차피 저승으로 가서 죄를 묻고 청산하여 환생하게 되면
잊어버릴 일이었다. 그럼 그럴까? 이 한마디에 소리 내 웃는 모습이 좋았다. 신입 사자를 맡은 기분이었다.
"와... 이렇게 되는 거구나."
사쿠라이는 생전, 아니 죽어서 처음 보는 아이바의 다른 얼굴에 신기함을 그대로 내비쳤다. 여태까지 애인의 얼굴을 띄고 사쿠라이와 7개월을 있어 왔건만, 생각해보니 생전 좋아하는 이의 얼굴로 찾아온다는 것은 다른 이를 데리고 갈 때는 그 자가 좋아하는
이의 얼굴을 띄는 것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지켜본 아이바의 얼굴은 죽은 자를 설득하고, 죽은 자를 인도하고, 죽은 자와 말다툼이
생겼을 때마다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다. 또한 죽은 이를 무력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저승사자는 굉장히 낯설었고, 차가웠고, 무서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감과 기쁨,
그리고 두려움이 이상하게 섞여 들어갔다.
"쇼짱, 무슨 생각해?"
"...나 네 이름도 모르네."
문득 생각나 중얼거렸건만, 저승사자의 표정이 오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곧 웃으며 그렇긴 하다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이바 마사키. 그게 저승사자의 이름이었다.
"아이바군?"
"에, 우리가 성으로 부를 사이?"
"아니, 잠깐 바로 이름으로?"
"하지만 난 쇼짱이라고 부르는 걸."
그건 그랬다. 그래서 그냥 마사키라고 부르기로 했다. 비로소 동년배 친구가 생긴 기분에 괜히 기분이 좋아 스텝을 빠르게 밟으면
사쿠라이가 급하게 뒤쫓아왔다. 좀 천천히 가라며 툭툭 치면서.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된 양 그대로 아이바는 갑자기 멈춰 섰다.
아이바를 가볍게 치고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가던 사쿠라이가 따라오지 않는 아이바를 눈치채고 뒤로 돌아 보았을 때,
그때의 아이바의 표정은 사쿠라이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모습은 사쿠라이에게 애인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싸해진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며 급하게 다가와 물으면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는 작은 목소리로 아이바가 중얼거렸다.
"...집..."
"집? 어디?"
"우리 집..."
설마. 마사키의 집? 사쿠라이는 혼란스러웠다. 어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듯 몇백년 몇천년은 지난 저승사자일 줄 알았는데,
가족이 살아있는 거면 해봤자 몇십년이잖아. 물론 이 상태로 가족을 맞이하면 그것은 슬프고 위로할 일이었다.
그래서 사쿠라이는 그 작고 사소한 당혹감을 억지로 외면했다.
"마사키 너네 집? 설마 가족이..."
"쿠앙짱...!"
"쿠앙...짱? 잠, 마사키!"
급하게 이동하려는 아이바를 겨우 옷 끝자락을 붙잡아 함께 이동한 사쿠라이는 어느새 어느 한 주택 대문 앞에서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바를 보고 다가가자, 웃을 듯 울 듯 움찔거리며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쿠앙짱이, 혹시,"
개가 꼬리를 흔들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서 있었다.
*
쿠앙짱은 사쿠라이가 본 그대로 개였다. 골든 리트리버. 본인 같은걸 키웠네,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이 찌그러진 아이바의 얼굴을 보니 함께 코 끝이 찡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개는 뭔가 알기라도 하는 듯
신이 나 뛰어오지 않았다. 그 활발함은 오롯이 꼬리에 담은 채 천천히 걸어와 아이바를 쳐다보았다. 반갑다고 짖지도 않았다.
"명을 다해서... 응, 다행이야..."
끝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바는 그와 함께 웃음을 지었다. 죽어서 보게 되었다는 그 무력감과 슬픔. 그리고 병이나 사고로 고통의
죽음이 아닌 때가 되어 맞이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행복감이 함께 섞인 것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쿠라이는
저 상태에서 죽은 가족을 맞이하여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이바의 기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이해 못할
경험일 것이다. 사쿠라이는 그저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아이바의 발걸음이 어디론가 향하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인지, 자신의 노견을 위한 배려인지, 혹은 둘 다 인지, 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예측하려는 자신의 습관을 사쿠라이는 오랜만에 자각했고, 오랜만에 미워졌다.
그 날의 일은 그걸로 종료되었다. 사실 더 있겠지만 미룬 것일 것이다. 사쿠라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딘가의 강가에 함께 앉아 조용히 울고 있는 아이바를 보며 어떻게 위로 해줘야할지 고민했다. 위로를 할 수 있는 존재인가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라도 챘다는 듯이 아이바는 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쿠라이가 속으로 궁금해하는 것들을 찬찬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전 이야기, 저승사자를 하고 있는 기간, 그리고 현재는 애인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아까의 모습이 자신의 원래 모습이라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쿠라이는 어느새 발갛게 부어오른 눈가를 조심스럽게 문질러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였다.
"그럼, 그... 개는 노란 털을 가지고 있어서 다쿠앙으로 지은 거고."
"응... 우스꽝스럽지? 처음 만났을 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니까."
"하하... 그래도 나름 귀엽네. 그... 저승사자들은... 보통 생전 기억을 가지고 일하는 거야?"
"응? 아...니. 내 경우가 특이 케이스래. 오노상도, 아, 내 상사인데 그 사람도 그래. 오노상 말로는 죽을 때 슬퍼하는 이가
일정량 이상이어야 하고, 죽을 때 자신을 포함하여 원망이 일체 없는 자만 가능하대."
근데 그런 사람이 드물대, 원망 없이 죽기가. 그렇게 말하는 아이바는 조금 진정이라도 된 건지 눈물이 그쳐있었다. 원망이라... 원망은 확실히 쉽게 생겨나고 어렵게 떨어져 나가니까. 사쿠라이 역시 아마 애인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신 스스로 원망을 하다가 죽었던 것 같다. 그게 없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건데. 아마 아이바는
평소에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만 봐도 그렇게 사는 것 같아서 쉽게 예측이 되었다. 아이바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
사쿠라이가 아이바를 따라다닌 지 어느덧 1개월이 다 되어갔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달랐다. 말도 안 되지만, 한 두 번 가족을 보러 간 것 빼고는 6개월 내내 애인만 따라다니던 사쿠라이가 이젠 거의 온종일 아이바를 따라다닌다. 이상했다.
확실하게 이상했다. 애인에게 가라고 하면 자신이 지겨워진 것이냐며 흑흑거리는 장난을 쳤다. 장난이긴 하지만 엄연히 가기 싫다고 티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심과 궁금증이 오늘에서야 풀렸다. 평소처럼 자신을 따라오려는 사쿠라이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너 이상하다고. 장난기 있던 미소를 머금고 있던 사쿠라이는 그 말에 웃음을 거뒀다. 얼굴에 힘이라도 풀린 것 같았다.
순식간에 달라지는 표정에 오히려 당황한 아이바를 두고 사쿠라이는 아무 말 없이 땅을 쳐다보더니 묵묵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조금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았다.
"있잖아, 마사키."
"...응."
"그... 애인이, 뭐 그럴 수 있는 거지만, 그만큼 시간이 지났으니까. 응..."
"..."
"애인이, 그러니까, 흠... 마코가 애인이 생겼거든."
"...그렇구나."
사쿠라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은 채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멍을 때리는 건지 깊은 생각에 빠진 건지 궁금했지만 차마 아이바는 물어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건들면 부서질 것 같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이 잠깐의 적막을 깨줄 제 3의 인물이 나타난 것은.
"오노상?!"
"여어. 뭔가 심각하네?"
이런 속사정을 오노에게 말해도 되는지 아이바는 오노와 그를 바라보는 사쿠라이 사이에서 눈치만 볼 뿐이었다. 물론 그 눈치는
사쿠라이가 담백하게 생전 애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로 금방 끝이 나버렸다. 오노가 어떻게 반응할지 잠깐 걱정했던 것도 그냥
"그렇구나" 한마디로 끝이 나버렸으니 오히려 아이바는 허무해졌다.
"그러니까, 어쨌든. 그 유명한 '쇼짱'을 만나다니. 반가워."
"에, 저 유명해요? 왜?"
"그야 8개월 동안 누가 망자가 된 쇼짱을 이승에 남겨두고 있는걸."
그거 실적에서 까여. 아무렇지 않게 아이바의 사정을 말해버리자 당황한 아이바와 놀란 사쿠라이는 서로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실적이 엄청 까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까이긴 까이기 때문에 오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실적 때문에 사쿠라이를 데려가기엔 아이바 스스로가 아쉬웠다. 응? 뭐가 아쉬운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건만 아마 친구를 잃는 기분이지 않을까, 아이바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사쿠라이 역시 아이바와 비슷했다. 애인이 이미 호감을 느낀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것 때문에 아이바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인도 연인이지만 아이바와 헤어지기 싫어 여태 떼를 쓴 것이었는데
이게 실적에서 까인다니, 본인에게 전혀 듣지 못한 정보였다. 미리 말해줬으면 좀이라도 빠르게 맘을 정리했을 텐데,
사쿠라이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을 정리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러니까, 그렇지, 어느새 생겨버린 정,
우정을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을 마무리했다.
"마사키, 그 지금이라도... 그... 갈까?"
"아, 아니! 그, 뭐냐, 실적 얼마 안 까이고... 나도 쇼짱이랑 이렇게 친구 되었는데 헤어지기 싫고!"
"얼씨구."
자랑이다. 오노는 횡설수설 얼버무리는 아이바의 뒤통수를 가볍게 내리쳤다. 그제야 혼란스러워진 분위기를 알아챈 듯 아이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든 저승사자로서는 좋지 못한 이유였다. 하지만 사쿠라이의 표정에서 안심이 비쳐나오자 아이바는 언제 변명을
했냐는 듯 금방 헤실거렸다. 오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것들을 어쩌면 좋지. 하지만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귀찮은 것도 싫었다. 대충 1년만 넘기지 말라는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 둘과 헤어졌다.
"한창이네."
*
할로윈이 찾아왔다. 이 말인즉슨, 저승의 공휴일이라는 소리이다. 물론 할로윈은 죽은 자를 다시 볼 수 있는... 대충 뭐 그런,
서양의 문화가 맞지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죽은 뒤 죗값을 치르고 환생하지도 못하는 저승의 공무원들을 위한 유일한 휴일이 되었다. 물론 정말로 10월의 마지막 날엔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은 저승에 최소 인력만을 남기고 어차피 망자였을 공무원들이 이승에 놀러 가는 날이라고는 할 수 있다. 개중에는 놀러 간 공무원들을 보는 인간도 간혹 가다 있긴 하다. 하지만 그리 문제가 되진 않는다. 공무원들은 그저, 휴가를 즐길 뿐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강제적인 휴가는 아니다. 이 날 일을 하는 공무원은 보너스를 지급받기도 한다. 그게 죄를 깎아주는 것이든, 급여든 간에. 그리고 아이바는 휴일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전
가족들을, 친구들을, 지인들을 지켜보았다. 생전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로도 모자라 그들이 잘살고 있는 것. 충분한 위안이자
행복이었다. 기억이 있어도 시간이 흘러 이들이 죽는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 일일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할로윈이기에
누군가 우연히 아이바의 이야기를 꺼내서 잠시 침울한 시간이 찾아오면 아이바는 그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기억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는 죽은 자만이 알 것이기에 이들은 이런 감정을 절대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하면서. 그렇게 하루가 점점 끝나간다.
"무슨 일이야?"
"마사키."
거의 하루를 두시간 정도 남겼을 때 사쿠라이가 아이바의 집을 찾아왔다. 마치 여기 있을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떤 감정을 품고
찾아왔는지 사쿠라이의 무표정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싱긋 웃어 보이는 사쿠라이에 오히려 아이바의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나. 가려고."
"어디에?"
"...저승으로."
갑작스러운 말에 아이바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1년 거의 끝자락까지 있을 줄로만 알았던 사쿠라이가
어느새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서 최대한 있어 줄 것 같았던 친구가 자신 몰래 떠날 정리를 한 것 같아 괜히 울컥 하고 무언가 차오른다.
"내 실적 때문에 그래? 실적 얼마 안 까인다니까. 정말이야."
"...아니야, 마사키. 그냥... 별 이유 없어. 그냥, 정말로 그냥 때가 된 것 같아서."
웃어 보이는 사쿠라이였지만 마주하고 있는 아이바에겐 아프고 서럽게 찡그리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자신이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욱신거리며 점차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저승사자인지라 막을 수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사쿠라이를 말려왔던 것도 사실 그리 좋지만은 않았으니까. 사쿠라이의 선택을 존중해야만 했다.
"쇼, 쇼짱, 정말... 그냥인 거지?"
"그러엄... 진짜 그냥이야. 정리는 마코가 애인이 생겼을 때부터 하려고 했...었는데, 자꾸 뭔가 걸려서, 떼를 썼어.
근데 한 달 전에 알았거든."
그게 너였다는 거. 그렇게 말하며 아이바를 바라보는 사쿠라이의 눈은 왠지 반짝인다. 눈물인가 싶지만 물기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 보고 싶어서 버텼는데 안 되겠더라는 말을 담백하게 소화해내는 사쿠라이를 보고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건지 미안해지는 아이바였다.
"그래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떠나라는 말 몰라?"
그 말대로 할래. 그게 멋진 것 같아. 사쿠라이는 이 말을 끝으로 선뜻 아이바에게 다가가 안겼다. 꽉 껴안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힘주어 길게 껴안았다.
"나 저승가면..."
"..."
"이제 평생 너 못 봐?"
"..."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살며시 떨어지는 몸이 싫었다. 금방 끊어질 것 같은 이 관계가 너무나도 미웠다. 하지만 못 본다니까
아쉽다며 이야기하는 사쿠라이의 얼굴은 무언가 홀가분해 보여서 차마 앞에서 울 수가 없었다. 아이바가 앞서 걸으면
사쿠라이가 뒤따랐다. 보폭이 평소보다 느리고 작아도 사쿠라이는 별 말 하지 않았다.
아마 모를 것이다. 망자 사쿠라이와 만나면 자연스레 바뀌어야 하는 외관이 언제부턴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자신의 애인이 검은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동그랗고 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어줬는지
아이바는, 아마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