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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따끔

​블랙페앙 X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남자2

​토카이 세이시로 X 토도 아유미

“선생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베개 밑으로 머리를 파묻은 채 잠에 빠져 있던 토카이의 머리 위로 불쑥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잠결에 ‘알 게 뭐야, 꺼져.’

소리가 목 끝까지 튀어나왔으나, 그 질문을 던진 이가 누구인지 동시에 떠올라 입 밖으로 내뱉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제게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심지어 의국 소파도 아닌 제집에서. 

 

햇볕이 따가워 저도 모르게 베개 밑을 찾아 들어간 게 대충 오전 7시 무렵이었다. 그 뒤로도 서너 시간은 푹 잔 모양이었다.

완전히 중천에 뜬 해가 창밖으로 쨍하니 내리쬐고 있었다.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토카이가 리모컨을 들어 커튼을 완전히 내렸다.

갓 잠에서 깬 이에게는 지나치게 눈이 부셨다.

 

“무슨 날이었지?”

“무슨 날이긴요! 눈 제대로 뜨고 여기 좀 보세요!”

 

목이 갈라져 칼칼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려면 한참은 더 걸릴 듯했다. 매일같이 수술, 또 수술, 다시 수술.

그러다 아주 드물게 쉬는 날이면 죽은 것처럼 잠들어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그 습성을 알면서도 등 뒤의 존재는 토카이를

재촉하기 바빴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의국의 세라가 들었으면 눈물 흘릴 말이었다.)

느리게 몸을 돌린 토카이의 눈이 서서히 동그랗게 변했다.

 

“오늘이…… 무슨……?”

“할로윈이잖아요! 할로윈!”

 

잔뜩 흥분한 목소리는 열한 살 난 여자아이에게서 뛰쳐나왔다. 마녀인지 마법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챙이 넓고 끝이 삐쭉하게 올라간 검은 모자에 레이스와 가죽으로 장식된 새까만 미니 드레스까지 꽤 본격적이었다. 그 밑으로 신은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 양말이

깜찍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쇼핑을 간다고 하더니 평소보다 서너 배는 큰 금액이 적힌 영수증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더랬다. 얼마를 쓰든 무엇에 쓰든 상관하지 않는 토카이조차 뭘 샀길래? 하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묻진 않았으나.

 

토카이의 시선은 금세 그 옆에 자리한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스무 살이 넘은 지도 좀 되었으니 이제 아이라고 부르기엔 미묘했으나,

제 눈에는 여전히 아이처럼만 보였다.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돌던 어린아이. 창백하게 질린 낯, 깡마른 몸에 상처만 그득하던 미아.

그랬던 것이…….

 

아이의 머리 위로 늑대 귀가 쫑긋거리고 있었다. 기계 장치라도 넣은 듯 아이가 고개를 슬쩍 움직일 때마다 함께 귀가 접혔다가

펴졌다. 다 찢어져 입은 건지 걸친 건지 벗은 건지 모호한 긴팔 줄무늬 티셔츠를 본 순간 토카이의 낯이 찌푸려졌다. 북슬북슬한

털장갑과 조끼가 그나마 날씨를 고려했나 싶었다. 시선이 쭉 밑으로 내려가 같은 털로 만들어진 반바지를 스치고 또 얼기설기 찢어진 검은 스타킹에 고정되었다. 스타킹 밑으로 슬그머니 비치는 발가락이 토카이의 시선이 아래위로 이동할 때마다 꼬물거렸다. 

 

“이대로 나가면 얼어 죽지 않을까?”

“선생님은 감상이 그게 다예요?!”

 

남자 어른만 보면 제 오빠 또는 어머니 등 뒤로 숨기에 바쁘던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다 커서 저를 혼낼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반응이 영 탐탁지 않았는지 발을 구르던 아이가 팩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갔다. ‘이래서 세이시로 아저씨는 재미가 없다니까!’

어머니와 늘 함께 지내다 보니 말도 그대로 전수받은 듯했다.

 

그리하여 방 안에 남은 것은 둘. 꼬맹이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했다.

재미없이 살아왔어도 아이보다 길게 살아온 덕분에, 겨우 스물 조금 넘은 녀석의 머릿속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토카이가 손을 들어 까딱까딱 움직였다. 아이가 그 손짓을 따라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움직일 때마다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들 앞에 서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속을 숨기는 아이가 왜 이리도 긴장하는지 모르려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다 토카이가 불쑥 손을 뻗었다.

손끝이 찢어진 티셔츠 안, 마치 분장인 것처럼 드러나 있는 상처 위에 톡 닿았다. 동시에 아이가 미모사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상처…… 보기 싫죠.”

“아니, 전혀. 어머니가 이러자고 했지? 싫진 않았어?”

“신경 안 쓰시는 게 배려인 거 알아요.”

“근데 왜 보기 싫으냐고 나한테 물어봐. 너만 괜찮으면 되는데.”

 

이미 답을 알면서도 굳이 물어놓고서 토카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이가 제 반응을 신경 쓰는 건 당연했다. 어린 나이의 첫사랑이라는 것이 흔히 그렇듯이, 상대의 시선 하나에도 심장이 덜컹거리니까. 심지어 아이가 가장 드러내기 싫은 상처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병원 베드에 눕혀놓고 몸을 다 들여다본 의사가 그 상대라도 보여주기 싫은 것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묻고야 만 것은 저 역시도 아이만큼 유치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탓이었다. 

 

이렇게 무심히 아이의 마음조차 모르는 척 굴면 아이가 언젠가는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

동시에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반응을 적나라하게 만끽하고 싶은 마음. 두 상반된 마음이 뒤섞여 엉망이었다. 

 

저와 제 동생 외의 모든 인간을 불신하고 이따금 저주하고 때로는 원망하고 한 번씩 분노로 들끓던 아이가 어느새 토카이 세이시로의 울타리 안에서 곧고 말간 시선을 보내왔다. 제아무리 재미없는 토카이라도 감정을 지닌 생물인지라 저 좋다고 하염없이

주변을 종종거리는 어린 것에 정이 갔다. 아이의 애정이 천천히 그 색을 달리하는 사이에 저 역시도 옮아버리고 말았다.

 

서로 마음이 같으니 해피엔드. 그러자니 걸리는 것이 지나치게 많았다. 예를 들면 더 오래 산 자로서 지녀야 할 책임이라든지.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그렇게 오래 산 덕에 그렇게 책임이 있어 사회생활을 참도 그렇게 하느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또는 좁은 세계에서 살아온 아이를 여전히 좁은 제 세계에 이대로 가둬도 되는가에 대한 양심이라든지.

 

그런고로 발목을 잡는 제약과 자꾸만 깊어지는 마음이 따로 노는 탓에 애꿎은 아이만 괴로운 상황이었다.

아이를 더는 몰아세울 수 없어 토카이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순수하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고 어디 나갈 일 있어?”

“치에미네 학교 친구가 집에서 할로윈 맞이 가든파티를 한다나 봐요.”

“그 엄청 큰 집에 산다던?”

“네. 그 집이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아이 의상에 힘을 준 건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열한 살짜리 아이들이 모이는 파티이니 사립 학교의 치맛바람

거센 부모들이 줄지어 따라올 텐데 그 사이에서 기죽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모르지 않으므로. 그리고 어른들 사이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기 싫었으므로 결국 토카이는 어머니가 안배해둔 대로의 말을 꺼냈다.

 

“밤늦게 돌아올 텐데 같이 가줘?”

“……피곤하실 텐데 괜찮아요?”

“어차피 내 의상도 준비해뒀잖아.”

 

아이가 슬며시 웃는 얼굴에 어느새 장난기가 돌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 뒤늦게 애써 입가를 딱딱하게 굳혀봐도 그 기색을 완전히

숨길 순 없었다. 아이는 얼른 몸을 돌려 방을 뛰쳐나가더니 금세 돌아와 옷걸이 서너 개를 함께 내밀었다. 

 

“뱀파이어?”

“네! 셔츠 위에 이거 입으셔야 해요. 그리고 이거, 불편하지 않으면 이것도요.”

 

내밀어진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조그마한 이빨 두 개가 올라가 있었다. 가짜 송곳니를 본 순간 토카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불편하지 않으면, 조건이 붙긴 했으나 상식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떤 구조로 되어 있든 이에 무언가를 붙이면

위화감이 있기 마련. 그럼에도 토카이는 군말 없이 송곳니를 받아들었다. 

 

“언제 나가?”

“선생님 준비되는 대로요.”

“치에미 벌써 신발 신고 있는 건 아니지?”

“아직은 아니에요. 곧 신을 것 같으니까 빨리 준비해주세요.”

 

등 떠밀리듯 욕실로 들어오자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가짜 송곳니가 뾰족하니 거슬렸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정말 잡아먹기라도 하란 말인가.

할로윈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취해, 실컷 놀고 돌아온 치에미가 곤하게 잠든 밤, 일상 속 비일상의 순간에? 

 

한참을 고민하던 토카이는 결국 반은 그 계획에 발을 담갔다. 평소라면 기겁했을 셔츠에 조끼에 치치렁한 망토에 날카로운 송곳니.

흔히 말하는 뱀파이어 복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선 제 모습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아이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몰라 드레스룸의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는 꼴이 마치 조금 전의 아이와 똑같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침대에 앉아 있던 아이가 냉큼 달려왔다. 이런 번잡한 행사에 참가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저를 알기에

더 과장해서 칭찬하려 드는 게 빤한데. 참 빤한데 얄밉지는 않았다.

 

“잘 어울려요! 치에미가 엄청 좋아하겠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 송곳니도 꼈네요! 안 불편하세요? 감쪽같다.”

 

신기한 듯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송곳니를 구경하는 아이에게 토카이가 불쑥 고개를 더 들이밀었다. 시선이 정면으로 맞았다.

아이가 내쉬는 숨이 입가와 뺨을 간지럽혔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내밀면 입이 서로 닿을 거리였다. 토카이는 느리게 고개를 틀어

아이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아주 살짝 가져다 댔다. 아이의 온몸이 돌처럼 굳는 게 느껴졌다.

 

“뱀파이어가 옆에 있는데 이렇게 태평해도 돼? 내가 물어뜯을지도 모르잖아.”

“와……! 깜짝이야! 선생님도 할로윈이라 들뜨기도 하나 보네요! 농담을 다 하시고.”

 

급격하게 가까워진 거리에 굳어 있던 것도 잠시, 그보다는 토카이의 농담에 더 놀란 듯 아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팔로 툭 어깨를 밀어내며 너스레를 떨고 신이 난 듯 눈을 반짝이는 걸 보고 있자니 맥이 탁 풀렸다. 오늘도 글러먹은 듯했다.

 

‘농담 아닌데.’

 

언제 말하지? 토카이가 한숨과 함께 창가에 몸을 기댔다. 어느새 아이는 쪼르르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지간히 들뜬 모양이었다.

치에미의 신발을 신기느라(대체 어떤 신발이길래) 아이 둘이 끙끙거리다 웃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해맑고 평화로운 배경음을 들으며 토카이는 홀로 심각했다.

 

‘400살도 넘은 주제에 너한테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나 어리기는 다 마찬가지지, 무슨 차이가 있어서?’ 

 

어머니가 주장하는 나이 감각을 모르는 바도 아니나, 그래도 스무 살과 서른 살은 다른 법.

토카이 마음에 남은 마지막 양심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머니 속 가짜 송곳니에 찔린 허벅지가 아팠다. 따끔따끔.

[쇼른러 A] @subacfort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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