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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안해주면 장난칠거야

나라타주 X 가족게임

하야마 타카시 X 요시모토 코우야

바람이 쌀쌀한 저녁. 퇴근길. 그리고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하야마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손 안에서 옅게 점멸하는 핸드폰을 바라보자 간결한 문장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어디야?]

 

유다이 씨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지금 마트 앞이요.]

[정류장 너머에 있는?]

[네. 카라아게 사가려고요. 먹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입 안 크게 오므라이스를 먹으면서도 다음 요리를 주문하는 그의 모습이 생각나 옅게 웃음이 터졌다. 만약 옆에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으리라. 사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라 더 자중해야하는데, 좀처럼 제어가 되질 않았다.

왜 갑자기 웃냐며 아이들에게 한 소리 들은지 얼마나 됐다고.

 

[직접 튀기려고 재료 사는 건 아니지?]

 

순간 어제 저녁, 번거롭게 직접 튀기지 말고 그냥 사오라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에도 알겠다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건 까만 눈동자 속에 잔잔히 깔려있던 걱정 때문일 것이다. 하야마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자판을 두들겼다.

 

[네, 그냥 사갈게요.]

[너 마트 앞에서 기다려 5분이면 가]

 

그의 문자가 도착한 것은 막 문자가 발송되고 난 뒤였다. 뒤늦게 밖이 차니 굳이 나오지 않으셔도 된다며 글을 보내봤지만 이미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집을 나섰는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걸어오셔도 10분은 걸릴 텐데. 하야마는 성급히 연달아 문자를 보냈다. 안 보실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여나 넘어지면. 바람이 추운데 그탓에 오한이라도 난다면. 온통 요시모토 걱정

투성이였다. 그가 들었다면 분명 서른이 넘는 사람에게 무슨 유난이냐며 혀를 찼겠지만, 그래도. 유다이 씨니까.

 

[마트 앞에서 기다릴게요 유다이 씨.]

[천천히 오세요.]

[바람이 차요 너무 뛰면 안돼요.]

 

답장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쥐며 기다린지 5분. 요시모토는 정확히 5분만에 하야마 앞에 섰다.

뛰어오느라 열이 오른 얼굴과, 제법 거친 숨과 함께.

 

“착하게 잘 기다리고 있었네.”

“유다이 씨.”

 

태연한 척 다가온 요시모토가 잔뜩 걱정을 머금은 얼굴을 달래듯 팔을 들어 약간 구불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와중에 자연스럽게 제 손길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봐도봐도 충견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떠올리고마는 생각이었다.

 

“춥진 않으셨어요? 바람이 차요.”

“별로. 그냥 네 생각만 하면서 뛰다보니까, 추운 줄도 몰랐어.”

“그러셨어요. 기쁘지만 슬프네요.”

 

슬플 것도 참 많다. 피식 입꼬리를 올린 요시모토가 손을 내려 하야마의 뺨을 톡톡 쳤다. 그리곤 멈칫, 얼굴이 살짝 굳었다.

 

“유다이 씨?”

 

하야마가 고개를 기울이며 요시모토의 안색을 살피던 찰나, 휙 하고 빠르게 양 볼이 잡혔다.

당황할 새도 없이 진지한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왜 그러시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타카시.”

“네, 유다이 씨.”

“너 왜 이렇게 볼이 차가워?”

 

네? 반사적으로 되물은 하야마가 제 볼을 만지던 유다이 위로 손을 올렸다. 차가운 느낌이 단숨에 전해져온다.

제가 느끼기엔 유다이 씨 손이 더 차가운 것 같은데. 속상함이 가득한 목소리는 여러 윽박에 막혀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또 감기 걸리면 어쩌냐는 꾸지람부터,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는 재촉까지. 모든 것이 다정이었다.

 

“......”

“유다이 씨?”

 

다급하게 손을 끌어당길 땐 언제고, 마트 안으로 들어온 요시모토가 대뜸 걸음을 멈추었다. 유다이 씨? 하야마가 고개를 틀어 얼굴을 마주하자 이제부터 어쩔 거냐는 듯한 얼굴이 돌아왔다. 어쩐지 곤란해보이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요시모토가 뭐냐며 미간을 찌푸리자 하야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살살 고개를 저었다. 요리하실 때도, 지금도. 익숙하지 않은 일을 경험할 때마다

살짝 멈칫거리는 모습이 유난히 새로웠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뭐 살거야?”

“글쎄요. 일단 카라아게를 사야겠죠.”

“다 조리된 걸로 살거야.”

 

단언하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곳으로 발을 옮기는 모습에 하야마가 작은 웃음으로 뒤를 따랐다.

네. 답하는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르게 가벼웠다.

 

“...나 좀 많이 먹는데.”

 

당연하는 듯이 두 팩을 집은 요시모토가 순간 멈칫하며 하야마를 올려다보았다. 원하는 만큼 사셔도 돼요.

야식도 아니고, 저녁밥이니까. 하야마는 원하던 대로 하시라며 요시모토 손에 들린 카라아게를 받아들었다.

튀긴 걸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기야 하겠다만, 며칠 동안 벼르고 벼르던 식사였으니.

국 한 팩을 더 집는 요시모토를 보며 하야마는 국과 반찬의 염분을 좀 줄여야겠다 생각했다.

 

“또 뭐 사야해?”

“일단 계란이요. 오늘 냉장고 보니까 다 떨어졌더라고요.”

“...여기 있는 게 다 계란인데, 뭘 사야해? 무조건 싼 걸로 사면 되나?”

 

진열된 계란을 보고 있던 요시모토가 답지않게 어리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참을 둘러보며 낯설게 이것 저것을 뒤적이는 모습은

뭐든지 곧잘 해보이는 평소 요시모토와는 꽤나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마치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듯 힐끗 저를 바라보는 모습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웃음이었다.

 

“...그냥 니가 알아서 골라.”

 

그 탓에 불퉁한 표정을 지은 요시모토가 홱 몸을 돌려 주류 코너로 가버리고 말았지만.

 

“네? 잠시만요, 유다이 씨.”

 

제법 진중한 표정과는 달리 목소리에는 한껏 웃음이 가득했다. 하야마는 익숙하고 조금은 빠르게 유통기한을 확인한 뒤,

늘 사먹던 계란을 골랐다. 사케 드시게요? 곧잘 따라와서 묻는 말에 요시모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번 묻고 고개를 끄덕이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제 다 산 거야?”

 

요시모토가 물건이 담긴 바구니를 보며 말했다. 하야마는 그 말에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좀 아쉬운데... 반찬 재료가

마당치 않아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이대로 배고픈 유다이 씨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일.

햐야마는 저를 기다리고 있을 요시모토를 향해 이제 그만 돌아가자며 고개를 돌렸다.

 

“...유다이 씨?”

 

그런데 어느센가 제 옆에 서있던 요시모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언제나 그랬듯 요시모토의 모습을 좇던 하야마가 차가워진 손을 고쳐잡았다. 잠시 방황하고 있자니, 저 멀리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커다랗게 파격 글자가 붙어진 세일 문구 앞.

채소 코너에 선 요시모토가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야마는 그제야 잠시 멈췄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안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언제나 짧은 순간도 그리워할 만큼 매번 그를 찾았으니까.

 

“유다이 씨.”

“아, 미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요시모토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뭘 그렇게 보고계시나했더니, 단호박이었다. 하긴 이맘때쯤 되면

단호박을 싸게 팔았지. 싼 값치곤 맛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초특가라 적힌 단호박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그였다.

맨 마지막 이유만으로도 호박을 살 이유는 충분했다.

 

“...나 아직 먹고 싶다고 얘기 안 했는데.”

“그렇지만 드시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반찬 가지수도 부족했고.”

 

그렇게 말없이 그의 눈길이 닿은 단호박을 바구니 안으로 넣고 있자니, 옆에서 변명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아닌 거면 어쩌려고.

내뱉은 말과는 달리 요시모토는 따로 호박을 내려놓으라거나, 쓸데없는 짓이었다며 꾸짖지 않았다. 단호박 좋아하시는구나.

하야마가 작게 웃었다. 이 호박으로 뭘 만들면 좋으려나. 여러 조리법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 조림으로 해줘. 단호박조림.”

 

이미 생각해놓으셨네. 바구니에 담긴 단호박 두 개를 가리키며 조곤조곤 요구하는 말에 하야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저녁은 카라아게랑 맑은 된장국, 단호박 조림으로 할까요.”

“맥주도.”

 

어쩐지 맥주를 세 캔이나 고르시더니. 무심하지만 마시고 싶다는 의향을 듬뿍 담아 내놓는 말투였다.

 

“네, 그렇게해요.”

 

하야마는 왜 그리 웃냐는 요시모토의 핀잔을 받을 때까지 잔뜩 웃는 티를 냈다. 그 모습에 심통이 난 요시모토가 두 개로 나눈

비닐봉지 중 더 무거운 것을 하야마에게 넘겼지만, 무리없게 드는 모습에 분풀이는커녕 짜증만 더 샘솟고 말뿐. 다가오지마.

결국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급히 표정을 갈무리하는 하야마였다.

 

*

 

“그냥 자르면 돼?”

 

보던 책까지 뒤집은 채 도와주겠다며 부엌에 들어선지 1분.

하야마는 호기로운 말과는 달리 칼을 집어선 채 바로 도움을 청하는 요시모토를 보며 작게 웃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 유다이 씨는 이 뒤를 도와주셨으면 해요.”

 

육수내던 것을 멈추고 도마 앞에 선 하야마가 제법 능숙하게 호박을 잘라냈다. 대담하네. 요시모토는 하야마의 손에 큰 호박이

조각조각 잘려나가는 것을 보며 낯선 감상을 내놓았다. 저런 건 그냥 나한테 맡겨도 좋을 텐데. 문득문득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심한 작업은 무리라도, 저렇게 큰 호박을 조각내는 거라면 꽤나 쉬울 것 같...은 것도 아닌가.

내 손에 맡기면 아마 호박조림이고 뭐고 다 엉망이 돼서 결국 쉐이크로 먹어야할지 모르니.

 

“자르는 게 익숙해보이는데.”

“네. 단호박조림은 꽤 많이 해먹었어서.”

 

어쩐지. 써는 폼이 익숙해보인다 했다. 요시모토가 작게 중얼거렸다. 줄자로 잰 것마냥 일정한 크기의 조각들이 도마 위를

굴러다니던 찰나.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차싶었는지, 요시모토가 뒤늦게 하야마를 노려보았다.

 

“네가 다하면 난 할 게 없잖아.”

“그게 걱정되셨어요?”

 

제법 다급해보이는 모습에 하야마가 다 했다는 양 살짝 물러섰다. 여기서 뭘 더 할 게 있냐고 투덜대는 어조가 마치 왜 네가

다하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아 하야마는 선연하게 웃었다. 마치 선생질을 하는 것처럼.

불평하는 아이에게 모든 역할이 중요하다고 다독이던 그때처럼.

 

“한 3cm 정도만 모서리를 다듬어주실래요? 제일 중요한 역할이에요.”

“...거짓말.”

“정말이에요. 둥글게 다듬지 않으면 서로 부딪혀서 모양이 망가지니까.”

 

...결국 모양 문제지, 맛은 다 네가 내잖아.

 

하지만 언제든 안 그런 적이 없었다. 못마땅한 얼굴로 육수가 담긴 냄비와 조각난 단호박을 번갈아보다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도 할 줄 아는 요리가 있어야지. 요시모토는 오늘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보면, 하야마와 살게 된 이후로 점점

한숨 쉬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희한하게도. 예전엔 한숨 쉬는 법을 잊으면 호흡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앗...”

 

줄곧 답지않게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에 잠겨있다가, 순간 손가락에 화끈한 느낌이 번졌다. 베였나.

하지만 피가 얼마 나오지 않는 걸 보니 크게 다치진 않은 듯했다. 아픔도 그저 옅게 베인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냥 종이에 베인 정도려나. 이정도쯤은, 하야마와 살기 전까지 빈번하던 상처였다. 나 휴지 좀. 대충 닦아내고 다시 칼을 쥐려던

요시모토의 행동을, 어느새 표정이 굳은 남자가 멈춰세웠다. 심각한 얼굴. 이런 표정을 보는 건 오랜만이지 않나.

 

“별거 아냐. 그냥 좀 베인 정도.”

“...별 거 아니라뇨. 피가, 많이 나잖아요.”

 

하야마가 제법 다급한 발걸음으로 구급상자를 들고 나왔다. 불안한 얼굴. 꼭 온갖 상처란 상처는 제가 다 집어먹은 얼굴이었다.

그 꼴을 가만히 응시하던 요시모토는 고개를 내려 다시 한 번 상처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반응할 정돈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만류하는 목소리였지만 하야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평소 요시모토가 무슨 말만 하면 다 들어주려고 애쓰던 모습과 다르게, 제법 낯선 행동이었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고. 그것도 붕대를 감으려한 것을 요시모토가 막아세워 결국 반창고로 타협했다. 너 너무 호들갑떨어. 다시 푹 떨어지는 한숨에 하야마는 천천히 눈을 마주했다. 유다이 씨 일이잖아요. 하물며 다치셨는데. 뭐라 말하려던 요시모토는

이내 꾹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는 눈빛. 어쩐지 대꾸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고보면 하야마는 늘 그랬다. 무슨 말이든 그것이 요시모토의 입에서 나온다면 다 들어줄 것처럼 굴어놓고선, 정작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원래 망가져야 마땅했던 요시모토 코우야의 삶이, 점점 멀쩡하게 변하고 있었다. 오직 하야마 타카시 때문에. 원래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 그렇지만 결국 요시모토는 하야마를 내치지 못했다.

그 속에 있는 누군가가, 타고 유다이라는 남자가. 욕심내선 안 될 감정에 자꾸 미련을 걸친 탓이었다.

 

“...다 됐어?”

“네. 다행히 깊게 베이진 않아서...하지만 며칠간 칼은 쥐면 안되겠어요. 남은 단호박은 제가 다듬을 테니까,

유다이 씨는 앉아서 쉬고 계세요. 상처 부위에 물은 안 닿게 하시고......”

“싫어.”

 

네? 오랜만에 퍽 당황한 얼굴을 한 하야마가 되묻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하야마를 보던 요시모토는 다시금 말을 머금었다.

싫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홱 고개를 돌린 요시모토가 원래 자리를 찾아가려는 양 터벅터벅 부엌으로 향했다.

 

“칼쓰면 안된다니까요. 다치셨잖아요.”

“어제도 네가 다하고, 그저께도 그랬잖아. ...나도 조금은 군식구 생활을 탈출해보고 싶다고.”

“군식구라니, 무슨...”

 

단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고,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못했던 말이었다.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과분하다고 느낄 정도인데.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정말이에요.”

“알아. 네가 그런 생각을 할 리 없다는 거. 그렇지만 나도 염치라는 게 있어, 타카시.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데.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뭐든 널 도울 일을 줘.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잠시 지긋히 요시모토를 바라보던 하야마는 알겠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끝끝내 칼은 멀리 치워놓았다. 혹시 또 다치시면 안되니까. 못마땅한 눈빛이 돌아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기를 놓고 사온 카라아게의 포장을 벗겨 접시에 올려놓는다. 몹시 간단한 일이었다. 다 했어.

나름 정갈한 식탁의 모습에 하야마가 은은히 웃었다. 감사해요. 항상 필요 이상의 감사를 입에 담는다고,

요시모토는 굳이 말해도 되지 않을 말을 입에 담으며 하야마 옆에 섰다.

 

“다 된거야?”

“이제 조리기만 하면 돼요.”

 

깎은 호박 위로 육수를 넣은 뒤 화력을 중불로 줄이는 것까지. 요시모토는 하나하나 하야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조림용 뚜껑을 발견해 이런 것도 사놓았냐며 혀를 내둘렀던 것은 덤이다.

 

“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사놨던 기억이 있어요.”

“뭐, 나랑 단호박조림 해먹는 일?”

“그런가. ...그렇네요.”

 

이렇게 행복한 상상은, 감히 꿈꿔본 적도 없지만요. 요시모토의 말에 맑은 웃음이 터졌다. 하야마는 손 끝에 느껴지는 프라이팬의

열기를 느끼면서도, 이 순간에서 깨지 않길 진심으로 빌었다. 너무 행복하고, 분에 넘칠 만큼 따뜻해서 그랬다.

이것이 영혼을 빌미로 한 악몽이어도 다 좋다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금세 윤기가 도는 단호박을 접시에 담고, 잘 먹겠습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방을 감쌌다.

따끈한 밥과 국, 하물며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카라아게까지 제쳐두고선, 요시모토는 제일 먼저 단호박 조림에 손을 댔다.

 

“맛있어.”

 

한 입 베어물자마자 저도 모르게 감탄이 입 밖으로 세어나왔다. 그런 요시모토를 보던 하야마는 유다이 씨는 항상 맛있다고

해주시니까요, 하며 또 그놈의 행방 모를 다정을 앞세우는 말을 늘어놓았다. 자각 없는 것도 이 정도면 서럽지. 기껏 맛있는 음식을 두곤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요시모토가 재빨리 다른 단호박 조각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완전히 몸을 틀어 하야마를 마주했다.

 

“아.”

“네?”

“아, 하라고.”

 

얼떨결에 단호박을 받아먹게된 하야마가 의문을 숨기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런 하야마를 보며, 요시모토가 나름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여태껏 꾹 눌러왔던 말이 터져나온 것처럼.

 

“어때, 맛있지?”

“...네, 괜찮네요.”

“넌 자기 실력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 난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말할 만큼 비위가 좋지 못하거든.”

 

응, 국도 맛있네.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다시 식탁을 마주한 요시모토가 국물을 마시더니, 다시금 맛있다는 평을 내놓았다.

밥 안 먹을 거야?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야마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유다이 씨는 어디까지 다정하실 생각인가요.

차마 묻지 못할 질문이 서서히 흩어졌다. 마치 헤어나오지 못할 행복에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할로윈이더라.”

 

31일이라는 달력의 숫자를 빤히 쳐다보던 요시모토가 태연히 말했다. 하야마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운 것을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과자나 사탕을 요구해와서, 좀 깜짝 놀랐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날이 있었지,

하니까 그걸 이제야 알았냐면서 놀리고. 나름 정신 없는 하루였네요.”

“트릭 오얼 트릿이었나. 과자를 안주면 장난칠거다. 대충 그런 소리였지.”

“네. 하나같이 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더라고요. 하지만 과자가 없어서, 결국 수업을 일찍 끝내는 걸로 겨우 장난은 면했지만요.”

 

너는 여전히 무르고 다정하네. 후식으로 아까 사왔던 쿠키를 오독오독 씹고 있자니,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유다이 씨? 한참 말없이 밋밋한 얼굴을 바라보던 하야마가 저를 부르자, 요시모토가 돌연 고개를 돌리곤 씩 웃었다.

무언가 생각나셨구나. 이따금 저렇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요시모토는 하야마가 미처 생각지못한 일을 벌일 때가 많았다.

그게 얼마나 짖궂은 일이든, 그가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지우진 못했지만.

 

“키스 안해주면 장난칠거야.”

 

아. 하야마가 옅게 웃었다. 어느새 허벅지 위에 앉은 몸이 마침 각도 좋게 식탁 위에 있는 쿠키를 가리고 있었다.

과자는 안 받으시겠다는 건가.

 

“입맞추는 것도 좋지만, 그럼 유다이 씨의 장난은 못 받게 되나요?”

“둘 다 받고 싶어? 희한한 부탁이네.”

“유다이 씨한테 당하는 거니까요.”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지.”

 

이러니까 더 괴롭히고 싶잖아. 검지로 콧등을 쿡쿡 건드린 요시모토가 눈을 흘기자, 하야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늘 버릇처럼 입에 담았던 말.

 

“유다이 씨니까요.”

“...확 잡아먹어 버릴까.”

 

입술을 삐쭉 내밀곤 투덜대는 말에 잔잔하던 입가 위로 팍 웃음이 터졌다. 하하, 눈꼬리를 접으며 살살 웃음을 터뜨리는 하야마를

바라보던 요시모토가 대뜸 목에 팔을 두르곤 얼굴을 바싹 붙였다. 그런 저를 보며 가만히 시선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앞으로 장난을 당할 미래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오늘은 네가 당황하는 얼굴이 보고싶어.”

“제가 어떻게하면 될까요.”

 

글쎄. 짧지만 진득하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 요시모토가 발끝으로 천천히 하야마의 다리를 문질렀다. 잠깐이지만 대놓고 의도가

드러나는 행동에 하얗게 드러난 목 위로 얼굴을 묻으면, 바로 간지러운 듯이 신음을 흘리는 요시모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읏, 너 지금 키스 안해주려고 그렇게 애태우는 거지.”

“뭐든 유다이 씨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그래서, 장난 받을거야 말거야.”

 

입술에 쪽쪽 키스를 날리며 묻는 말이 꼭 따지는 것만 같았다. 원래 장난을 받는 역할이건만, 정작 지금의 모습은 꼭 제가 장난을

치는 쪽의 입장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역시 자신은 유다이 씨에게 휘둘리는 쪽이 어울리는 편이라는 걸, 하야마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장난 받고 싶어? 슬금슬금 허벅지 위로 손을 옮기며 나지막히 묻는 말에,

하야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장난 받을게요. 장난 받게 해주세요.”

“좋아.”

 

원하는 대답을 얻었는지 만족스런 웃음이 지어지고, 이내 그들이 앉아있던 의자 아래로 한 벌, 한 벌씩 입고 있던 옷이 떨어져내렸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목덜미가 울긋불긋해지겠지. 조금은 할로윈 다운 꼴이 되지 않을까,

안경을 벗은 얼굴 위로 다시 한 번 천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수리] @SSRH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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